“공권력이 투입되는 것에 불안감과 초조함을 많이 느껴요. 가족도 걱정되고. 그리고 고립돼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세상 한복판에 나와 있는데 (세상과) 단절돼 있잖아요.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죠.”

하이트진로 청주공장에서 6년간 화물노동자로 일한 김건수(38)씨는 지난 16일 오전부터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옥외광고판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서울 금싸라기 땅 한복판에 놓인 노동자의 하늘감옥.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김씨는 고공농성으로 “단절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느끼는 고립감은 고공농성 때문만은 아니다. 살기 위해 시작한 고공농성인데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화물노동자를 때론 ‘지입차주’로 혹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부르는 정부는 이들의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하이트진로는 자사 공장에서 회사 이름이 도색된 차를 운전하는 화물노동자들을 “당사 근로자가 아니다”고 고개를 돌렸다. 대화는 끊겼다. 보수언론들은 “폭력행위”라고 이름 붙였다. “‘불법노조다’ ‘폭력집단이다’ 그런 뉴스만 나오니까 뉴스에 안 나오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하죠.”김씨가 느끼는 고립감은 여기서 온다.

그런데도 김씨는 “이 모든 상황이 끝나야 내려갈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대전지역본부 하이트진로지부가 지난 6월부터 시작한 파업은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 강원도 홍천을 거쳐 서울 강남구로 왔다.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이 투쟁을 하는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저녁 전화로 고공농성 중인 김씨의 얘기를 들었다.

중·장년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해고는 살인”
“낮은 처우에 ‘물갈이’ 안 돼”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은 15년간 깎인 운송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 초기에는 운송료가 쟁점이었지만 현재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계약해지가 더 큰 문제가 됐다. 지난 8일 화물노동자들이 소속된 수양물류가 파업 중인 조합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모두가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하이트진로는 파업 중인 조합원 12명에게 2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본사를 점거농성하는 지부 조합원들을 고소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운송료 문제였는데 지금은 130여명에 대한 집단해고와 손해배상·가압류, 각종 고소·고발 건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지부에 따르면 조합원의 65%가 40대를 넘긴 중·장년층이다. 1945년생 ‘해방둥이’ 조합원도 있다. 김씨는 “노후 준비가 안 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연세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길바닥에 나앉으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며 “이분들에게 정말 해고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합원들의 나이가 많은 이유는 낮은 처우 때문이다. 김씨는 “화물업계는 처우가 좋으면 젊은 사람이 들어와 소위 ‘물갈이’가 되는데, 여기는 업계 최저 처우라 물갈이가 되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들이 못 버티고 나가다 보니 기존에 있던 분들만 남아 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직이 쉽지도 않다. 차량 할부금과 유지비 등 초기투자비용과 유지비 같은 고정지출이 높아 일을 쉴 수 없는 데다 ‘정산’구조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김씨는 “화물업계는 일한 지 50~60일 뒤에 운송료를 정산하는 경우가 많아 이직할 곳을 바로 구하지 못하면 몇 달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며 “차량 할부금, 기름값, 수리비 같은 고정지출이 높다 보니 단순히 생활비를 못 받는 상황을 넘어서게 된다”고 토로했다.

“동료들은 뉴스 보고 울어”
“노조법 2조 개정 서둘러야”

현재 옥상과 옥외광고판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은 약 10명. 식사는 경기도 이천에서 동료들이 지은 밥을 올려 해결한다. 저녁시간이 되면 뜨거운 광고판 열기에 숨이 막힐 정도다. 의식주 모두가 어렵지만 가장 큰 걱정은 ‘공권력 투입’이다. 하이트진로 직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옥상에 올라와 문을 두드리며 ‘퇴거명령’을 하는 탓에 농성자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한다. 밖에서 소리가 나면 모두 몸으로 문부터 막는다. 김씨는 “(옥상의) 저 문이 뚫리는 게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생활을 각오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는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얘기하고, 외치고, 행동했다”며 “하이트진로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게 쟁의행위와 몸으로 표현하는 것 밖에 없었다”며 “우리의 말이 짜깁기돼 악의적으로 보도되거나 우리를 아예 쳐다보지 않고 회사의 입장만 받아쓰는 언론 때문에 동료들은 뉴스를 보고 울기도 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아) 그게 너무 억울하다”며 “불법 점거라는 뉴스 때문에 사람들이 허탈해하고 상처받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에 따라붙은 ‘불법’ 딱지는 역설적이게도 노동법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 화물노동자는 사업자지만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이들의 운송료는 수양물류와 하이트진로가 결정한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에서 ‘근로자’의 의미를 좁게 정의하면서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이들의 파업은 합법 파업이 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이트진로가 이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교섭을 거부하는 근거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87호 협약은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같은 특수고용직도 결사할 자유를 보장하고 원청도 교섭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의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정부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조법 2조가 서둘러 개정돼 우리도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회사와 교섭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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