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자원부 장관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불법파업’으로 명명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산업 현장에 있어서, 또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으로 노동선진국이 됐다는 정부 주장과는 반대로 ‘불법파업’ 낙인으로 간접고용 노동자가 노동 3권조차 보장받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쟁의조정 절차 거친 ‘합법’파업”

우리나라에서 합법파업은 무수한 장애물을 건너야 얻을 수 있는 명칭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는 그 목적, 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파업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방법과 절차도 법에 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파업 목적은 근로조건의 향상만 해당한다. 대개 임금·근로조건 사항을 놓고 충실한 협상을 했는데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만 파업할 수 있다. 민영화 반대 같은 목적의 파업을 하면 현행법으로는 불법이다. 쟁의조정 절차도 거쳐야 하고 조합원 동의도 얻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은 합법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지회는 올해 22개 협력사와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최초로 진행했고, 지난달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결정을 받았다.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거쳤고, 정식으로 쟁의권을 획득한 상태다.

원청사업장 안 하청노동자 파업도 원칙적으로 합법이다. 대법원은 2020년 9월 검찰이 공공운수노조 수자원공사지회를 업무방해와 퇴거불응죄로 기소한 사건에서 하청노동자가 원청 사업장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은 업무방해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도 지난 15일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유최안 부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집회 및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채권자의 공정(건조, 진수 일정 포함) 또는 채권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은 지회의 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판례상 배타적 점검농성은 불법” vs
“사법부 최종 판단 없이 ‘불법’ 규정 안돼”

물론 위법성을 다퉈야 할 지점은 있다. 유최안 부지회장과 지회 조합원 6명의 1도크 점거농성이다. 지회는 지난달 2일 조선소 안 8개 거점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형태로 파업을 해 왔지만, 사측 관리자 집단과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자 1도크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대법원은 1990년 10월 “근로자들의 직장점거는 사용자측 점유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조업도 방해하지 않는 부분적, 병존적 점거일 경우에 한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기업 시설을 장기간에 걸쳐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유하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노조법에는 점거행위를 할 수 없는 시설을 대통령이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정부는 시행령에 이를 열거했는데, 그중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해당하는 조항이 있는지 따져볼 여지는 있다. 통영지원은 지난 15일 가처분 신청에서 노조법이 정한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벗어났다고 봤다.

민변은 이날 성명에서 “대법원은 하청노동자의 원청 사업장에서의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폭력 또는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점거농성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파업투쟁 과정에서 일부 위법사항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곧바로 부정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합법·불법 논란과는 별도로 정부가 ‘불법파업’ 운운하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동 변호사(금속노조 경남법률원)는 “고용노동부 장관은 어쨌든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를 잘 조율해 나가야 하는 기관의 수장”이라며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불법이다, 아니다를 단정 지은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이 문제는 현재 파업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전체 하청노동자 처우 문제가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제기준은 사업장 점거 보장”

지난해 국회 비준을 거쳐 이달 28일이면 발효 100일을 맞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에 관한 협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 상황에서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구시대적”이라며 “큰 손실을 끼쳐서 불법이라는 표현도 하는데, 원래 파업·쟁의행위라는 것은 업무의 정상적 행위를 저해하는 행위로 손실을 수인하는 것이고 손실이 많이 난다고 불법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몰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는 “기본협약 87호가 보장하는 파업권은 직장점거도 합법적인 형태로 인정한다”며 “살인·방화·테러 등 극단적 방식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쟁의행위 후 노동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하는 관행에 대해 “우리나라가 국제노총(ITUC) 노동권 지수에서 매년 최하등급인 5등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라며 “쟁의행위에 형법이나 민법을 적용해 사실상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적법이냐 위법이냐를 떠나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정부가 진압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 관한 바로미터 될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문제는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의 권리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철폐연대 활동가는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을 지켜보는 이유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정당한 파업권을 행사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가로막히는지, 이후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공권력 투입 운운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인 모든 파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며 “심지어 노조법상 절차를 다 거친 합법파업이 불법파업이라고 하고 탄압의 명분을 만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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