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에 대한 복구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화물창 바닥에 용접한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로된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뒀고, 다른 6명은 10미터 높이의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대형선박 수주가 초과 달성됐다는 뉴스 사이에 가려진 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구조조정의 잔인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연대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민주노총은 거제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었고, 5천여명의 노동자가 거제로 모였다. 서울에서도 6만명의 노동자가 모여 ‘임금 억제·노동시간 후퇴’를 중단하고 물가폭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보다 5일 전인 지난달 28일엔 철도 노동자들이 민영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거제와 서울의 거리는 멀지만, 목소리가 가리키는 지향은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임금 억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8일 경총을 만나 “물가 상승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며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임금을 올리면 제품 가격이 올라가 물가상승을 추동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추 부총리가 경총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4월22일 경총은 회원사들에 ‘2022년 임금조정과 기업 임금정책에 대한 경영계 권고’를 발송해 올해 임금을 최소 수준으로만 인상하고, 성과급 책정도 자제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추 부총리의 경총 방문과 발언은 자본가 이익단체의 이러한 목소리에 호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노사 간 임금결정에 이렇게 개입하는 것은 전 세계적 물가인상, 경기침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대가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른다. 자본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대기업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에서 이뤄져 왔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발휘하는 정치적 효과다. 정부 고위관료들이 발바닥에 땀나도록 ‘임금 억제’를 외치고 다니던 즈음인 지난달 2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3년도 최저임금을 9천62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에서 5.0%를 인상한 결과다. 양대 노총의 목소리가 부재했다면, 최근 치솟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쳤을 것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름값을 비롯한 물가는 폭등하고 금리도 가파르게 올라 노동자의 삶은 더는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며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은 푸념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5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국 봉쇄조치,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7%로 낮췄다. 한국금융연구원 역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2.6%로 0.6%포인트 하향조정했다. 이에 반해 물가인상률은 적게는 4.1%(5월)부터 6.0%(7~8월 전망치)까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가만 놓고 볼 때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로서는 별 변화가 없고, 금리인상까지 덧붙이면 ’영끌족‘들의 피 말리는 나날이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의 임금 억제 드라이브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여느 때보다 높다. 가뜩이나 물가인상과 금리인상으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 허리띠부터 조이는 것은 기만이라는 지적이다. 직장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모바일앱 ‘블라인드’에선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에 한정했을 때,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적지 않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5월25일 발표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300명 이상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300명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 임금은 69.1(전년 대비 0.2%포인트 상승), 300명 미만 사업장 정규직 임금은 58.6(전년 대비 1.2%포인트 상승), 300명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임금은 45.6(전년 대비 1.0%포인트 상승)였다. 2018년부터 최근까지 4년 내내 격차가 줄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경총이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수치가 아닌 20년 사이의 변화만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추이로는 임금 억제 주장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논리는 노노 갈등마저 유발해, 기업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효과도 발휘할 수 있다.

신한은행이 5월에 발표한 ‘2022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대유행이 이어진 2020~2021년 사이 가구소득 구간별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여기엔 임금노동자만이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포함돼 있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 자산이 21%나 상승하면서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5구간 고소득층의 평균 자산은 10억3천510만원으로, 전년 대비 1억2천586만원 증가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전 세계 빈부격차는 오히려 커졌고, 특히 슈퍼부자 억만장자들의 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역사상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반면 빈곤층 1억명은 더 심한 빈곤의 늪에 빠졌다. 상위 1%는 1995년 이후 축적된 부의 3분의1 이상을 가져간 반면, 하위 50%에게는 2%만 주어졌다.

이달 2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의 외침은 저임금 노동자의 조직된 투쟁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노조들이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펼쳐온 시도들과 억만장자와 자본가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야말로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실효적 대안일 것이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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