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23일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대해서 브리핑했다. 이튿날 대통령의 출근길 언론 문답(도어스테핑)을 통해서 공식 입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돼 버렸지만 이번 정부의 노동정책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언론에 배포된 브리핑 자료에는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30년을 총연맹 단위의 노동조합에서 기획·정책통으로 있었던 장관이 모를 리 없었을 터인데, 다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 투쟁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어떤 의미로 해당 문장을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책 브리핑의 내용은 근로시간단축을 가져오기보다는 노동시간단축 투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것들이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 구조적 문제와 4차 사업혁명, 저출생·고령화 등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산업화시대에 형성된 노동규범과 관행으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 인식은 무난하다. 하지만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노사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 선택적 근로시간의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 스타트업과 전문직의 현행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 재검토를 골자로 한 정책이 해법일 수는 없다.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따로 노는 것은 이번 정권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인간다운 삶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노동시간단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천명하면서 엉뚱하게 해석돼 온 법정노동시간을 바로잡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한 바 있다. 그리고는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특례조항을 뒀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사회적 합의를 명목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을 도모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빌미로 연구개발 업무의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근기법을 다시 개정했다. 법에 따라 행정을 집행해야 할 부처의 장관이 공공연하게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에 대한 근로감독을 미루겠다고 직무 해태를 선언했다. 또 특별연장근로를 풀어 주기 시작해서 코로나19를 빌미로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한 특별연장근로를 1년에 180일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했던 것도 지난 정부의 일이다. 유연화를 극대화하자는 현 정부 정책의 근거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은 높지 않고 불가피하게(?)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사실 손쉽게 특별연장근로를 허가받을 수 있으니 사업주들이 그렇게 했던 것일 뿐이다.

노동시간 관련 정책 방향이 기업의 이해와 생산성만을 중심으로 한 내용상의 문제보다는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중심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문제다. 노동시간단축을 역행하고 있는데 사회적 투쟁은 오히려 잦아들고 있는 것도 우려된다. 돌이켜보면 2019년 2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늘이겠다는 경사노위 합의가 나오자 당시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문제 제기가 있었고, 노동자 건강권의 관점에서도 다양한 비판이 나왔다. 이번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 논의에 대해서도 달라질 바는 없다. 세상에 공공연히 내놓는 글로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밝히는 이들은 표절을 경계하며, 여기에는 자기표절도 포함되며 필자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때 이야기를 또 쓰고 이야기한다. 노동자들에게서 오직 일하는 능력, 노동력만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고 수시로 교환하고 기계의 부속처럼 조립해 넣을 수 있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1년, 한 달, 한 주의 노동시간만큼이나 하루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온전한 휴식과 여가는 매일·매주·매월·매년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삶에서 온전히 노동력만이 분리·추출될 도리는 없으며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노동시간은 일과 여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노동자와 가족들의 건강을 해칠 것이다. 자신의 조직과 대표자를 두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인간적인 노동에 가까워지는 과정은 자신의 노동 과정과 노동시간에 대한 자율성·자기 권리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노동부 지침은 다양한 의학적·역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발병 전 12주간 평균 주 6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발생한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은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발병 전 4주간 평균 64시간을 초과해서 일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달 11일 노동부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환경을 노동기본권으로 추가한 사안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면서 “새 정부도 산업재해 예방 강화를 고용노동 분야 국정과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정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노사정이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 조성에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산재예방 강화와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 조성에 필수적이라고 할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고 과로사를 조장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닌가.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이다, 황당하다”라고 다시 말해 줬으면 좋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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