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라는 글에서 “역사는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소극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제1공화정을 파괴한 비극적인 사건인 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와 그것을 흉내 낸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두고 그렇게 비극과 소극(코미디)으로 비유했다.

마르크스의 이 말을 떠올린 것은 지난 9일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줄여서 ‘봉봉’ 마르코스)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것을 보고 나서다. 마르코스의 집권은 필리핀 역사에서 비극적 사건이지만 그의 아들 ‘봉봉’의 대통령 당선은 한낱 코미디 같은 일이라 생각돼서다. 사실 이런 코미디는 필리핀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10년 전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있다. 박정희의 쿠데타가 4월 혁명을 짓밟은 비극이라면 박근혜의 집권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 할 것이다. 이런 코미디가 동아시아의 두 나라에서 비슷하게 일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나라의 내외 지배관계와 계급투쟁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5년에 처음으로 비행기로 해외여행을 했다. 사무금융노조연맹 손해보험업종 간부들과 함께 필리핀 민주노총인 KMU(메이데이 노동운동)를 방문했다. 당시 필리핀은 아로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민중운동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루손섬 북부 탈락주 아시엔다 루이시타에서 파업 중인 플랜테이션 노동자 7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아시엔다 루이시타는 사탕수수 재배 농장으로서 마르코스 독재와 맞서다 살해당한 아키노 상원의원의 부인인 코라손 전 대통령 가문의 소유지다. 방문한 곳 가운데는 3년째 파업 중인 마닐라 남쪽 카바요 소재 다국적기업 네슬레공장 노동조합도 있었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그곳 노조 위원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괴한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것이 민중의 힘(people power)으로 민주화를 이룬 지 20년 후 필리핀의 실상이었다.

2011년에는 ILPS(민중투쟁국제연맹) 4차 총회에 초대받아 필리핀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아키노와 코라손의 아들인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가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아시엔다 루이시타가 위치한 탈락주의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졌다지만 아시엔다 루이시타의 농지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또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고 있었다. 한진 수빅조선소의 별명이 묘지(graveyard)였고 이 죽음을 멈추게 하고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했으나 해고를 비롯한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에 마닐라에서 수빅 한진조선소 노조 사무실까지 차량행진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7년에는 8차 아태지역 쿠바연대회의 참여차 필리핀을 방문했다. 당시 대통령은 두테르테였다. 그는 민족민주전선의 신인민군과 평화협정을 진행해 민중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평화협정은 결렬되고 두테르테 정권은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신인민군을 공격했다. 평화와 사회변혁을 기대하던 민중들은 두테르테에게 실망해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40여 년 전에 ‘민중의 힘’으로 축출당한 마르코스의 아들이 화려하게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조금 지루하게 필리핀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필리핀에 뒤이어 1987년 민중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뤄 냈다. 그 당시 한국의 야권도 필리핀의 야권과 똑같이 노란색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군부가 주도하거나 군부와 결탁한 테러독재체제는 미 제국주의의 ‘민주화 이행 프로젝트’에 의해 민주화됐다.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미에서 1980년대 전반기에 실행된 이 전략은 후반기에 동아시아에 이식돼 1986년 필리핀에서 먼저 민주화가 이뤄지고 그 다음으로 1987년에 대한민국이 민주화됐다. 하지만 그렇게 민주화된 필리핀에서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과 아들 베니그노가 각각 집권했지만 필리핀 사회의 반식민지·반봉건적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민중은 민주주의니 개혁이니 하는 것에 대해 기대와 신뢰를 접었고,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처럼 테러독재자가 소환됐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실망으로 박정희의 후광을 입은 이명박·박근혜가 집권했고, 박근혜 정권을 촛불혁명으로 축출했는데도 민주화와 개혁을 표방한 세력이 민중의 기대를 배반함에 따라 다시 박정희를 등에 업은 수구보수세력이 집권하게 됐다. 이런 코미디는 왜 자꾸 일어나는가.

그것은 지배계급이 역사의 순리에 따라 정치권력을 노동자·민중에게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마르코스와 박정희의 테러독재는 당시 그 나라들에서 급격히 고양되고 있던 민중의 민족민주혁명을 억압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추진한 것도 군사파쇼적인 억압이 역풍을 낳아 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고양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방혁명 전략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의 전환이 채택된 것이다. 이 체제는 내외 지배세력의 계급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통치방식을 ‘자유화’한 데 지나지 않는다. 민중은 주권자가 되지 못하고 테러독재 정권을 교체하는 데 동원되기만 했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구 테러독재세력이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테러독재로 회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복귀는 다만 자유민주주의의 우파적 버전으로서 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배체제는 변혁되지 않고 노동자·민중은 정치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필리핀에서나 한국에서나 민중은 수구보수든 민주개혁이든 모두 내외 지배세력의 정치적 집행자에 지나지 않음을 통렬하게 깨달아야 할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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