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건조정을 신청하는 강수를 뒀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는 대표적인 방안이다. 그렇지만 지난 5년간 법안만 발의됐을 뿐 논의가 실종돼 공론화하지 못했다. 재계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도입 논의가 다시 점화한 노동이사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거수기 전락한 사외이사 대체하는 게 본질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
 

▲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
▲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

지난 7일 오후 윤후덕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비롯한 기재위 여당위원들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대한 안건조정을 신청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소집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공공기관운영법을 신속히 처리하려는 의도다. 환영할 일이지만 만시지탄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약속한 건 문재인 정부다. 공약으로, 국정과제로 강조했다. 되는 일은 없었다. 말은 무성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뒷전이었다. 집권기간 내내 그랬다. 집권기간 내내 노동계가 요구하던 것을 해태한 장본인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아직 안심은 이르다. 앞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국회 논의는 없었다. 말만 앞선 사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여당이 사실상 허비한 셈이다. 만약 이번에도 이렇게까지 도입을 약속해놓고 또다시 개정에 실패한다면 이는 노동계를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마지막 열차라도 타보겠다고 잰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노동이사제 도입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를 대체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누구나 안다. 사외이사제도가 거수기로 전락해 사실상 기능을 잃었고 경제민주화는 물론이고 경영참여 확대와 투명성 제고 같은 대목에서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실상이 이를 증명한다. 앞서 자원외교니 4대강 사업이니 하는 국책사업을 공공기관 손을 비틀어 진행할 때 해당 기관 이사회는 어떤 제동도 걸지 못했다. 정권들이 나서서 이사회의 경영 자율성을 뭉개고 무력화했다. 공공기관은 누구나 알다시피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런 곳에 최소한의 견제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건 당연하다. 그게 사외이사였고, 사외이사가 실패한 지금 노동이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사회에서 국가 주도의 불필요한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국가로부터 투명성과 독립성을 국민에게 되찾아올 수 있는 수단이다. 경제민주화, 그리고 공공기관의 건전하고 독립적 운용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국민의 감시 차원에서 도입돼야 한다.

혹자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노조와의 유착 혹은 대립으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게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임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노사갈등이 불씨가 되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이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노동이사가 아니라 이사회가 애초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재계와 야당은 민간으로의 확산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산업 특성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사외이사가 민간기업이라고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은 기억할 대목이다. 특히 금융산업은 이미 그 기능과 권한이 크고 사회적 공공성이 중요해 수많은 정부의 규제를 받는 규제산업이다. 그러나 이런 금융산업의 현실은 어떤가. 정부의 촘촘한 규제마저 뚫고 문제를 발생시켜 기어코 사모펀드 사태 같은 문제를 낳지 않았는가.

본질은 사외이사를 도입했던 기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다. 금융지주사 회장의 입김 아래 선출돼 회장의 연임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가 있는 한 이사회는 이미 무력하다. 무력한 이사회에 경영진과 유착하지 않고 독립성을 가진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것, 그래서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고 기관 혹은 조직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것. 지금 이것을 가능케 할 방식이 노동이사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입법은 시대적 요구
조건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
 

▲ 조건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
▲ 조건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자는 현 정부 국정과제인 ‘노동이사제 도입’ 입법을 노동계와 약속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 입장에서 노동이사제 입법은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시대적 요구다.

서울시에서 2016년 노동이사 조례가 제정된 이후 전국 10개 특·광역시도와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출연 82개 공공기관에 102명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목적은 공공기관 노동자가 이사회를 통한 경영참여로 투명성과 공익성을 높이고,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공공서비스를 증진하는 데 있다. 결국 공공기관의 내부 지배구조 핵심인 이사회를 통해 공공기관 운영 목적과 성과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 주권으로부터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관장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대리인 문제인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을 차단해야 하고, 경영 대리인에 주어지는 성과인센티브 외에 감시·견제 기능을 통해 대리인 문제를 제어하는 것이다.

IMF를 겪은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비상임이사 제도를 도입한 이래 이사회라는 내부 지배구조를 통해 경영진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비상임이사는 정부나 지자체 관련 관리·감독을 위한 정부 파견 당연직 이사와 해당 사업에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또는 위촉직 이사)로 두고 있다. 결국 이사회 역할과 기능은 비상임이사의 역할과 기능이라 봐도 무방하다. 즉 비상임이사가 그것을 얼마나 감당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당연직·사외이사는 해당 공공기관 내의 조직·인력·노사관계·사내문화 등의 특성을 알지 못할 뿐더러 각종 이사회 중요 현안사항과 안건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한계를 가진다. 지난 정부의 실패한 해외 자원외교 사업이 그러했다.

공공기관 이사회 구성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노동이사제다. 노동이사는 직원 중에 선출돼 경영진과 비상임이사 간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할 수 있다. 해당 공공기관의 다양한 조직 특성과 노사관계를 포함한 경영상 실제 현안사항을 알고 있는 노동이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경영에 ‘메기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노동이사는 사내 근무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로 경영상 노출을 꺼리는 정보와 의견을 파악한다. 경영 투명성 관점에서 다른 비상임이사가 할 수 없는 이사회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노동이사의 정보와 이해는 현안사항에 따라 이사회 의장을 맡는 사외이사나 당연직 이사와 공유되고 공유 자체로도 이사회를 통한 경영 투명성과 신뢰성이 담보된다.

또한 노동이사는 이사회 내 구성원 간 협력적 하이브리드 역할을 수행한다. 이사회 구성원 간 등거리, 균형적 역할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의 설립목적에 반하는 정부의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경우 사외이사와 협력하거나 노동조합과 연대해 기관경영의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관 특성이나 상황 이해가 부족한 사외이사나 당연직 이사에게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 경영진 신뢰를 대변하기도 한다.

노동이사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노동이사 개개인 자질과 교육이 필요하고, 이사회 운영관리·성과평가 등 제도적 뒷받침이 가능하도록 입법이 중요하다. 지금은 지자체 조례로 시행하는 노동이사제를 법제화 하면 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경총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이사회가 노사갈등의 현장으로 변질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사회는 회의체다. 의견이 다르면 합의 또는 투표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경총이 주장하는 핵심은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기업 확대 이전에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라도 우선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 입법은 필요하다.

국민과 국가가 주인인 공공기관 이사회는 비상임이사인 노동이사와 사외이사가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때 경영 투명성과 공익성을 높이고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도모해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기관의 운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