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굴삭기에 치여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올해 상반기에만 40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할 정도로 ‘위험의 이주화’ 문제는 심각하다. 고용허가제 시행 17년이 됐지만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산재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사업장 변경 문제가 쌓여 있다.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 안소이 이주노동자권리 대학생캠페인단
▲ 안소이 이주노동자권리 대학생캠페인단

1963년부터 1979년까지, 2만명에 달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독일로 향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만 7천900여명, 간호사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은 종종 가난했던 조국을 지탱한 젊은 영웅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들이 겪은 가혹한 현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은 일정하지 않은 보수를 받으며 하루에 8~9시간씩 뜨거운 갱도에서 석탄을 캤다. 120여명의 노동자가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했던 열악한 주거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국제시장>과 같은 대중영화에 오르내리며, 그 시절 산증인들과 현세대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노동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그 사이 한국은 노동자 ‘송출국’에서 ‘유입국’으로 변모했다. 2019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취업비자 이주노동자는 57만명이다. 2021년에는 42만명으로 코로나19의 여파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 노동인구와 대비해 적지 않은 편이다. 여기에 취업이 가능한 결혼이주민·재외동포비자·영주권자·미등록자 등을 더하면 100만명이 훌쩍 넘는다. 50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의 의미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노동의 국제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새로운 약을 먹을 때 적응 기간이 필요하듯, 기존 사회에 외부인을 받아들일 때도 여러 진통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국제사회로 다가가기 위해 응당 감당해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이 몸살을 고스란히 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주노동자다. 지난 2020년 말, 캄보디아인 여성 이주노동자 고(故)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영하 18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난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속헹씨가 숙소로 제공받은 비닐하우스 내 임시 가건물은 안전성 문제로 인해 적법한 숙소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고용주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장 내 기숙사 제공 규정에 관해, 이주노동자 기숙사에만 예외적으로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포함한 것이다. 이후 수정된 개선안에서는 비닐하우스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이미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의 경우 해당하지 않는다.

고 속헹씨의 억울한 죽음과 납득하기 힘든 노동부의 대처가 세상에 알려지자 다양한 이주·노동단체가 대책위를 결성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 보장”이라는 구호 아래, 속헹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불합리한 현실과 구조적인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했다. ‘피눈물로 자란 농산물 먹지 않겠다’라며 피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낸 단체도 있었고, 광주의 농장 비닐하우스 화재 사고 때는 생필품을 지원하고 대책 마련 활동에 나선 단체들도 있었다. 당국이 고개를 돌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잡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들은 쉽게 타자화된다.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쓰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일차원적인 이유로 ‘우리’와는 다르다는 취급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시혜적인 시선까지 더해진다. 나아가 치열한 취업 경쟁 속 내국인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한다. 마치 그들이 호소하는 문제가 그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겪는 것에 지나지 않는, 내국인인 우리는 결코 대면할 일이 없는 문제라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협소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가장 낮은 위치의 노동자가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는 노동시장 전체의 권리와 복지 수준을 결정한다. ‘남일’이 아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등한시한다면, 언젠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리었던 산업연수생제도에 저항하며 이주노동자운동이 시작됐다. 명동성당 앞에서 제 몸을 쇠사슬로 묶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네팔 청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외로운 투쟁에 몸을 던졌을까. 비록 1년여 만에 추방당하고 말았지만, 그들은 이주·정주 노동자가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가 가시화됐으며,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노동자 전체,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권리는 인간을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인이든, 캄보디아인이든, 네팔인이든 권리는 그 모두를 같은 인간으로 볼 뿐이다. 이주노동자로부터 선택적으로 노동의 권리를 빼앗았던 건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연대로 그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다시 되돌려야 한다. 그것은 이주·정주 노동자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며, ‘우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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