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주최로 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가전방문서비스노동자 노동안전실태 조사 발표 및 문제 해결방안 토론회. <정기훈 기자>

가전제품 생산·렌털업체 SK매직에서 AS기사로 일하는 A(44)씨는 양팔 모두 성한 곳이 없다. 20여년간 AS기사로 일하면서 찍히고 찢기고 멍드는 “티가 잘 안 나는” 사고의 흔적이다. 이 중에도 왼팔 손목 아래에는 꿰맨 흉터가 선명히 남아 있다. 10년 전 세탁기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모터에 긁히며 찢어져 여러 바늘을 꿰맸다. 당시 특수고용직이었다는 A씨는 “치료비는 스스로 부담했고 하루만 쉬고 바로 다음날부터 일했다”고 말했다.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는 탓에 생계를 위해서는 아프다고 일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17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뒤에도 A씨는 일하다 다쳐도 여전히 산재보상을 신청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AS업무를 하다 다치면 ‘개인 부주의’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며 “한 사람이 쉬면 그 업무량이 동료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크다”고 전했다.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나 대여제품 방문점검원으로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되는 9개 특수고용직종에 속하지 않아 안전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전방문서비스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 특수고용직 범위 확대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골격계부담작업에 대부분 중복 노출
“차량할부금·보험금 부담돼 아파도 참는다”

서비스연맹과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는 지난 4~5월 실시한 SK매직·청호나이스·코웨이 3사 1천611명의 가전방문서비스노동자(정규직·특수고용직)가 참여한 설문·면접조사 결과를 8일 발표했다. 3사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태조사 결과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른 ‘근골격계부담작업’에 대부분 중복 노출돼 있었다.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어깨·팔꿈치·손목 또는 손을 사용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에는 10명 중 8명(79.8%)이 그렇다고 답했고,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이뤄지는 작업’에는 10명 중 6명(62.1%)이 그렇다고 답했다.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머리 위에 손이 있거나, 팔꿈치가 어깨 위에 있거나, 팔꿈치를 몸통으로부터 들거나, 팔꿈치를 몸통 뒤쪽에 위치하도록 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작업’의 경우에도 응답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48%) 그렇다고 답했다.

업무상 재해를 당해도 산재처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업무상 재해 평균 치료일수는 34.9일이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대상이 되는 4일 이상의 치료를 받은 경우도 73%로 조사됐다. 그런데 산재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했다”고 한 응답자는 95.1%나 됐다. 류경완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산재처리를 하면 평균임금의 70%를 받게 되는데 다쳐서 입원을 해도 (정규직·특수고용직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차량할부금이나 보험금은 나가기 때문에 아파도 참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이나 보호조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 응답자가 절반(51.3%)을 넘었다. 방문노동 특성상 고객의 갑질 같은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운데도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하라는 지침을 들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노동자는 여성이 18.5%, 남성이 37.1%였다. 여성 10.3%와 남성 24.3%는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노동부 “하반기 법령 개정시 가전방문서비스 포함”

이날 오후 서울시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가전방문서비스 노동자 노동안전실태 조사발표 및 문제해결 방안 토론회’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되는 특수고용직 범위부터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 특수고용직이 산재보험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가전방문서비스 노동자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사업주가 어떠한 안전보건조치를 이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법령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도 확대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손필훈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하반기 법령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직 범위 확대에 대한 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데 가전방문서비스 종사자도 ‘추가해야 하는 직종’에 포함돼야 할 것 같다”며 “대여제품 방문점검원이나 설치·수리기사가 세부적인 작업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업무특성을 감안해 어떤 보호조치가 적용돼야 하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인1조 근무제 도입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상길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건강연구실장은 “고위험군 고객을 대상으로 방문할 때 2인1조로 방문해 성희롱이나 폭언 등 괴롭힘에 노출될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위험군 고객 방문은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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