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드러나야 안전하다.’ 노동안전보건활동 과정에서 상식처럼 쓰이는 말이다. 산업재해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고, 실체가 가감 없이 드러나야만, 이를 기초로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감추고, 가려서는 당장의 문제를 은폐할 수 있지만 결국 문제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고 더 큰 사고와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으므로, 실태를 제대로 드러내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산업재해예방 정책에 공백이 있다는 지적을 할 때마다, 실제 현장과의 괴리를 거론하게 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가려지고, 은폐돼 축소된 산업재해의 현실을 토대로 정책이 마련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태와 규모가 실체와 달리 과장되거나, 축소되면 정책 또한 힘을 받기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특히 현장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정책이 산으로 간다.

파리바게뜨의 여성노동자가 바로 이 ‘안전을 위한 드러내기’ 때문에 징계를 당했다. 사건은 이렇다. 113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지난 3월4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주관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여성노동자의 화장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양한 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화장실 이용에 어떤 고충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 치부돼 쉬쉬하거나, 말하기 껄끄러워 삼켜 왔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노동권이며, 인권의 문제임을 같이 확인한 것이다. 이후 다양한 언론이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를 쏟아 냈다. 징계는 이것이 발단이 돼 이뤄졌다. 이런 현장 목소리 중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 사례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돼 회사 이미지를 실추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징계다. ‘회사 이미지 실추’는 여성노동자의 인터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전국 방방곡곡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는 제빵업계 공룡기업인 파리바게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80%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매장에 설치된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 가기가 꺼려지고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킨 요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터져 나온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 문제에 공감하고, 그동안 주목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을 반성하고 되돌아볼 문제다. 열린 자세로 현장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실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의견을 수렴해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이 ‘입 열기’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문제다. 노후되고 낙후된 건물에 입점된 상가의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기 꺼려져서, 스스로 참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는 노동조건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실추했던 것은 아닌지. 과장하거나 보탬 없이, 일하면서 겪는 고충을 말한 것을 문제 삼는 기업의 노무관리가 오히려 징계 대상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할 문제다.

‘드러나야 안전하다’는 상식은 노동재해 문제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현안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종종 언론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학교폭력과 따돌림 등의 문제도 그렇다. 문제가 드러나야만 비로소 해당 문제에 대한 대응과 실태 파악 및 예방대책이 마련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즉각적인 개선이 이뤄지기도 하며, 기존에 있던 제도 허점이 보완되고 단단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과정이 피해자들의 폭로나 극단적인 형태의 사건을 통한 경우들도 있지만, 당사자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얼마나 충분히 지지를 받는지, 이를 받아들이는 조직(기업)이 얼마나 열린 자세로 이를 수용할 태도를 갖는지에 따라서 문제가 사건화되지 않고, 구성원들의 노력을 통해 원만히(!)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터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그중 특히 여성·청소년·고령자·이주노동자 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자세로 청취하는 것은 노동재해를 예방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조성해 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그동안 아무도 제기하지 않아서, 혹은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아서 인식 못 했던 일터에서의 노동환경·노동조건과 관련한 문제들이 있다면,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파리바게뜨에서 징계를 통해 ‘입 열기’를 시작한 여성노동자들의 입을 막고자 하는 몰상식한 대처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 함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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