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얼마 전 고 이선호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 해결 촉구를 위한 피케팅에 나섰다. 사고 후 20일 넘게 빈소를 지키던 생전 고인의 친구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선호씨의 친구분은 “우리는 죽으러 일터에 가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제발 안전비용보다 사람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특별한 조치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것만 지켜졌다면 말이다. 안전사고 대책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회사, 형식상 이뤄진 안전교육, 안전관리자의 부재, 지급되지 않은 안전모.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장이었다.

사고에 책임이 있는 담당자·사측의 대응도 이제는 놀랍지 않다. 하청의 재하청 노동자의 죽음은 관리자의 관리자의 관리자에게 전해지고 나서야 119에 신고됐다. 원청은 똑같은 레파토리로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지시를 내린 담당자는 그런 적이 없다며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책임감을 느끼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사측의 태도. 반복되는 산재 소식에 이제는 무덤덤해진 사회의 반응을 보며 다시 한 번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얼마나 허울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와 같이 일하던 아들의 비극적인 사고는 2주 후에나 세상에 알려졌다. 그마저도 세상의 시선은 평택항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죽음에도 계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었을 부모가 나서서 자식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 이 비정한 현실이 너무나도 통탄스럽다.

지난 겨울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는 일을 하다 죽지 않기를 바라며 두 청년의 부모님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위해 단식농성을 강행하셨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하루에 7명이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에 문제제기했다. 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며 법제정 운동에 함께했다. 우여곡절 끝에 반쪽짜리더라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전진해 가려 하는 움직임에, 우리 사회에서 일터 안전에 대한 중요성과 노동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높아졌으리라 생각했다.

그날의 기대는 몇 번에 걸친 산재 소식과 다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이번 사건을 보며 송두리째 무너졌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노동자의 사망 소식에 아이러니하게도 무뎌진 대중, 한 사람의 생명보다 이익과 손실만 따지는 기업. 무겁고 큰 기계를 다루는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라 기사거리도 안 된다며 조회 수만 따지는 언론. 낯설지 않은 이 현실에 환멸이 날 정도다.

원청업체인 ‘동방’이 사과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가 조금 가라앉을 때였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은 부족하기만 하다. 사과문에는 사고원인 분석이나 재발방지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를 하는 방식도 잘못됐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려면 유족들을 먼저 만나야 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해야 했다.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유가족과 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대책위)와 협의해야 했다. 유가족은 원청의 사과를 기자회견을 통해 들은 것이다.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 발생 후 20일 만에야 이뤄진 사과였다. 그마저도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눈치를 보듯 졸속으로 이뤄졌다. 사과문에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약속을 요구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 반복되는 죽음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허망해진다. 그러나 더 이상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원청인 동방과 고용노동부·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는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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