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노동자 기숙사는 조리와 난방에 LPG가스를 이용한다. 기숙사 바깥에 가스통이 나와 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해 12월20일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3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속헹씨는 한파경보가 내려진 날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간경화라는 1차 부검의 소견이 있었지만 2016년 입국 당시 건강검진에서는 건강에 이상이 없었던 그의 죽음은 열악한 노동·주거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29일이면 속헹씨 사망 100일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이주노동자 숙소 실태와 대안을 짚어 봤다.

“연 매출 10억원인데 저런 숙소를…”

지난달 6일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의 안내를 받아 경기 포천 가산면 인근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기숙사를 제공하는 농가 5곳을 둘러봤다.

가산면은 포천 중심가인 소흘읍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무·시금치 등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농가가 밀집해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농가당 비닐하우스는 최소 50동에서 최대 150동 규모다. 지난해 12월 속헹씨 사망 후 취재진 방문이 이어져 농장주 경계가 매우 심해진 상황이었다. 실내를 살펴보거나 이주노동자와 접촉하면 눈에 띌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김 대표가 안내한 숙소들은 외관상 채소를 생산하는 다른 비닐하우스와 다를 바 없었다. 컨테이너 건물을 감추고 보온효과를 내려고 차양막과 비닐을 덮었다. 길이가 10미터 가까이 되는 비닐하우스지만 창문이 아예 없거나, 가운데 작은 창문 하나를 낸 것이 전부였다. 숙소 안에서 햇볕을 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비닐하우스 옆에는 간이화장실도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농민들이 밭이나 온실에서 일하다가 집까지 가기 어려울 때 이용한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이 화장실이 전부다. 위생이나 사생활 보호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인근 농장은 연평균 매출 10억여원정도로 알려져 있다”며 “이런 숙소를 제공하면서 월 15만~30만원 정도의 기숙사비를 이주노동자에게 징수해 간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7년 이주노동자에게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면서 과도한 비용을 공제하는 일을 막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식비 상한액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숙식비 징수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이 지침은 가설 건축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전면 허용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지침에는 주택에 준하는 시설이 아닌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은 월 통상임금의 8~13%를 숙식비로 납부하도록 한다.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숙소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임시 주거시설인 경우에도 숙박비 공제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덕분에 농장주들은 농지 위에 가설건축물 숙소를 짓고 월세라는 ‘부수입’을 거둘 수 있게 됐다.

시가지에 멀쩡한 원룸 널렸지만
농장 옆 숙소서 언제든 일할 준비

 

▲ 한 달에 15만원을 내는 이주노동자의 기숙사 화장실. 도로 바로 옆에 있어 내부가 훤히 보인다. <정소희 기자>
▲ 한 달에 15만원을 내는 이주노동자의 기숙사 화장실. 도로 바로 옆에 있어 내부가 훤히 보인다. <정소희 기자>

 

농장주 눈을 피해 캄보디아에서 온 20대 여성 이주노동자 3명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가까이 접근했다. 숙소는 이들의 일터인 비닐하우스 바로 옆이다. 빨래가 널린 비닐하우스 입구를 지나니 흙바닥 위에 벽돌로 지탱한 샌드위치 패널 원룸이 3개 보였다. 내부는 해가 들지 않아 낮인데도 깜깜했다. 건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원룸 바깥에는 밸브가 연결된 LPG 가스통이 보였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에서 가스로 조리하는 것은 화재 위험이 높다. 김 대표는 이곳에 사는 여성들이 사업주에게 1명당 15만원의 월세를 납부한다고 전했다.

기숙사 바깥에는 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있었다. 간이화장실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용변기 역할을 하는 넓은 대야를 흙 속에 묻고 그 위에 나무 널빤지를 여러개 얹어 발로 지지하도록 했다. 대야 주변에는 비닐이 둘러져 있었다. 도로 바로 옆에 놓인 화장실 내부가 훤히 보였다. 문도 닫히지 않았다. 화장실 옆에 나뒹구는 음식물 쓰레기가 위생상태를 짐작케 했다.

김달성 대표는 “24시간 노예노동을 위한 숙소”라고 불렀다. 비닐하우스 농가는 밤에도 하우스를 보수할 일이 잦다. 농업 특성상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업주들이 농장 가까이 기숙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농·어촌 이주노동자는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휴게 수당이나 휴일에 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다 보니 농장주가 이들을 옥죄고 일을 시킨다”며 “밤낮없이 농장주 연락을 받고 일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살펴보면 이 지역은 보증금 최대 300만원·월세 30만원에도 기본적인 가전제품이 갖춰진 ‘풀옵션’ 원룸을 구할 수 있다. 28일 기준 포천 시가지인 소흘읍에도 2018년에 지은 신축 원룸이 보증금 500만원·월세 30만원 매물로 나와 있다. 원룸들은 농장에서 왕복 30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즐비해 있다. 김 대표는 “농장주들은 출퇴근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들에게 농장 인근에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승용차로도 얼마든지 출퇴근이 가능할 것”이라며 “일부 농장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노예 취급하는 행태는 정부 제도와 지침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실태조사조차 없는 제조업

정부는 속헹씨 사망을 계기로 지난 1월 농·어촌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책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농·어업뿐 아니라 다른 업종으로도 대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제조업이다. 이주노동계는 숙소 시설이 가장 열악한 업종을 농업으로, 그 다음을 제조·건설업으로 꼽는다. 제조업의 경우 공장이 비교적 도심과 가까워 주택을 숙소로 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환기·방염·채광에 취약한 가설건축물이 다수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 경기 포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공장 위에 증축한 가설건축물에서 지낸다. 한 방에 성인남성 4명이 묵는다. <이주노조>
▲ 경기 포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공장 위에 증축한 가설건축물에서 지낸다. 한 방에 성인남성 4명이 묵는다. <이주노조>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제조업에 종사한다. 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고용허가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조업에 종사하는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는 4천806명(71.8%)이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1천388명(20.7%)에 비하면 세 배 넘는 수치다. 코로나19 영향이 없던 2019년에는 제조업 4만208명(78.2%), 농축산업 5천887명(11.4%)으로 제조업이 압도적이다.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2018년 발표한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에는 업종별 이주노동자 기숙사 유형이 나와 있다. <그래프 참조> 조사 결과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 숙소의 60%가 작업장 부속공간이나 임시가건물이다. 제조업은 56.2%로 절반을 넘는다. 농·어업에 비해 못지않은 수치지만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없었다.

이주노조는 지난달부터 제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숙소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경기 포천에 사는 한 조합원은 공장 2층에 증축한 가설건축물이 집이다. 방 한 칸에 성인 남성 4명이 지낸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모두 집 밖 공장에 있다.

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저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오니 개인 공간을 갖지 못해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3명은 한 방에서 묵는다. 기숙사비는 1명당 12만원씩, 인터넷 비용·전기이용료 등은 모두 별도다. 가설건축물 안의 숙소는 생활공간과 휴식공간이 구분되지 않는다. 세면대와 용변기가 까만 곰팡이로 뒤덮인 화장실을 이용한다.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은 “열악한 숙소 문제는 제조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라며 “정부는 주거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사업주 책임으로만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설건축물은 집이 아니다

노동부가 지난 1월6일 발표한 농·어업 분야 주거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99%가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한다. 사업주의 71%는 숙소가 근무장소 인근에 위치한다고 답했다. 숙소가 가설건축물이라고 응답한 이주노동자는 69.6%로 10명 중 7명이나 됐다. 이러한 가설건축물의 절반 이상(56.5%)이 미신고, 즉 불법건축물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가설건축물은 상시주거 목적에 부적합하다. 가설건축물은 건축법 20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허가를 받아 짓는 ‘임시 건축물’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설건축물의 용도는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것이지 지속적인 주거용도가 아니다”며 “가설건축물은 철근콘크리트조도 사용할 수 없고 구조적인 제한도 있어 단열 등에 취약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설건축물은 일반 건축물과 다르게 피난 등의 목적으로 건축 기준을 많이 완화받는 구조물”이라며 “건축물 이용자의 안전을 감안했을 때 사람이 거주해야하는 건축물과는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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