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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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채용 공정 시비와 관련해 눈에 띄는 조사가 있다. 지난해 7월 블록체인 기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비베이트가 내놓은 결과다. 조사에 참여한 1천327명 가운데 53%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의 원인으로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규직화를 위한 채용절차의 공정성이 문제”라고 답했다. 어떻게 채용했느냐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공채, 면접관 성향 따라 평가 다른 ‘불공정’ 게임
공채에 영향 주는 ‘학벌’은 미래 성과 보장 못 해

공개채용은 여러 채용절차 가운데 가장 공정하다고 여겨진다. 한날한시에 필기시험을 치르고 절차에 따라 단계별 면접을 보는 과정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에서는 공채를 줄이고 수시채용을 늘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SK그룹은 대졸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전면폐지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LG그룹·한화그룹·현대중공업·신세계그룹도 이미 공채에서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삼성과 포스코·롯데·GS 정도만 공채를 유지한다. 기업이 공정성을 외면하려는 것일까.

“채용 방식이 공정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기 공개채용이나 수시채용 모두 채용 과정을 얼마나 공정하게 운용하는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채용의 기준과 평가 과정,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 면접관의 자질 등을 따져 봐야 합니다.”

한 취업포털 인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 때문에 직무적합성을 더욱 강조하고, 인공지능(AI) 면접 등 객관적 지표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게 최근 채용의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공채가 능력 있는 인재 선발을 보장하지도 못한다. 공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는 학벌이다. 학벌은 10대 시절 쌓은 노력을 20대 초입에 보상받는 형태다. 미래의 역량이라 입사 뒤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 학업 능력이 우수할 것이라는 ‘기대’는 품을 수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기업 316곳을 대상으로 학벌이 채용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결과 53.5%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2019년 같은 조사보다 5.4%포인트 상승했다.

고소득층 사교육비, 저소득층 대비 5.2배 높아
“사교육비가 쌓은 학벌, 진짜 능력인지 기업도 고민”

학벌 형성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의 영향이 크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사교육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1천원이다. 참여시간은 하루 6.5시간이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격차도 크다. 2019년 월소득 800만원 이상인 가정의 사교육 참여율은 85.1%로 나타났다. 반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 가정 학생은 47%만 사교육을 받았다. 1년 전에는 47.3%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소득에 따른 사교육 격차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인 고소득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3만9천원이다.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10만4천원보다 5.2배 많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학벌은 기본적으로 대학 입시 당시의 점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그 이후의 노력이 반영되지 못한다”며 “학벌의 후광효과가 채용 단계에서 실제 능력보다 더 많이 작용하는 것은 결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학벌이 진짜 능력이냐는 문제에 기업도 회의적 시선을 갖고 있고, 진짜 능력을 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 역시 사교육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4년제 대학 3·4학년 학생과 졸업예정자 798명을 설문조사했더니 31.6%가 취업 사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 해 평균 218만원을 썼다.

전문가들은 교육 불평등이 고용 불평등으로 자연스럽게 전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공공부문 취업을 위해서는 결국 서울 소재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려면 이미 중·고등학교부터 자율형사립고 입시 경쟁 등을 치러야 한다”며 “이런 입시·취업 준비를 하기 어려운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형식적 평등만 추구하고, 사회·경제적 차별적 여건 속에 획득한 학벌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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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획득한 지위, 여생을 좌우
학력에 따른 직업 간 임금 격차 커

청년들이라고 이런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해 올해 3년차인 진아무개(26)씨는 “여건이 어려워 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에 가지 못하는 현실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능력에 따른 차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부의 대물림은 문제지만 능력으로 인한 결과의 양극화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불평등은 인정하면서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뭘까. 90년대생, G세대라는 세대별 특성 때문일까.

그보다 생애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재룡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이전 세대보다 풍족하다는 세대적 특성 등이 없지 않겠으나, 그보다 생애주기의 중요성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생애주기에서 20대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 보니 지금 획득한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20대의 선택이 여생을 좌우하는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취업 이후의 소득과 내 집 마련, 노후 등 이후의 삶의 조건이 20대에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로 결정된다.

직업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직업대분류별 임금수준별 임금근로자 통계는 이런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체 노동자 1천991만9천명 가운데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717만840명이다. 그렇지 못한 노동자는 1천274만8천160명이다.

717만840명의 직업은 그렇지 못한 노동자의 직업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통계는 직업을 △관리자 △전문가·관련종사자 △사무종사자 △서비스종사자 △판매종사자 △농림어업 숙련종사자 △기능원·관련기능종사자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단순노무종사자로 구분한다. 이 중 관리자는 37만1천명 가운데 34만2천명이 월 3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을 버는 노동자 비율인 36%를 기준으로 보면 전문가·관련종사자(52.4%), 사무종사자(47.5%),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41.2%), 기능원·관련기능종사자(40.3%) 순으로 비중이 높다.

이런 직업을 얻으려면 학력이 필수다. 같은 조사에서 정리한 교육정도별 취업자를 보면 대체로 그렇다. 조사에 따르면 중졸 이하는 농·축산숙련직에 82만8천명이, 청소·경비관련 단순노무직에 64만8천명이 취업했다. 조리·음식서비스직에도 26만명이 있다. 관리자나 전문가·사무종사자와는 관련이 없고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나 기능원·관련 기능 종사자와도 거리가 있는 직업이다.

고졸은 경영·회계 관련 사무직에 103만4천명이, 매장 판매 및 상품 대여직에 101만명이 종사한다. 조리·음식서비스직 84만2천명, 운전·운송 관련직 78만2천명, 돌봄·보건 및 개인 생활 서비스직 46만4천명 순이다. 대졸 이상은 경영·회계 관련 사무직 281만5천명, 보건·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직 126만4천명, 교육 전문가·관련직 110만8천명, 공학 전문가·기술직 79만4천명, 매장 판매·상품 대여직 67만9천명이다. 우선 사무직에서 압도적인 격차가 있고, 고졸 이하 학력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전문가 직종도 포함돼 있다.

출발선 격차는 갈수록 공고화
‘내 집 경쟁’에서 극복할 수 없는 차이

출발선에서 벌어진 격차는 시간이 흐른다고 완화하지 않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9년 9월 내놓은 고용조사 브리프를 보면 학력에 따른 입사 이후 임금 증가 격차를 볼 수 있다. 고졸 이하 학력을 가진 노동자는 입사 이후 4년 뒤 임금인상률이 25.9%다. 전문대졸 노동자는 같은 기간 31.5% 올랐다. 23.8%가 오른 대졸 이상 노동자보다 증가율이 높다.

그러나 실제 증가한 임금액수는 인상률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기간 고졸 이하 노동자는 42만4천원이 올랐다. 전문대졸은 54만1천원이 올랐다. 대졸 이상 노동자는 53만원 증가했다. 이 결과 고졸 이하 노동자는 163만9천원이던 임금이 206만3천원으로, 전문대졸은 171만6천원이던 임금이 225만7천원으로 올랐다. 대졸 이상 노동자는 222만7천원에서 275만7천원이 됐다. 대졸자를 기준으로 하면 메우기 힘든 격차가 생긴 셈이고, 대졸자 내에서도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격차가 뚜렷한 셈이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이후 경쟁에서 더욱 치열해진다. 부동산 경쟁이다. 잡코리아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기업 평균 연봉은 3천893만원에서 4천118만원으로 5.8% 올랐다. 이사이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3.3제곱미터당 1천918만원에서 지난해 5월 2천993만원으로 56% 올랐다. 임금인상률의 10배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월 300만원대 임금을 받는 청년노동자가 결과 보정을 통해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현상, 공정이라는 안갯속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사회의 현주소다.

내년 졸업을 앞두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현지민(25·가명)씨는 “(주어진 재력 차이는) 체감을 많이 한다”며 “주식투자를 해 보라며 부모님이 4천만원을 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3년차 직장인 권아무개(34)씨는 “주변에 부모의 지원을 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서 수익을 내는 이들이 종종 있다”며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입장에서 바라보면 박탈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권씨는 “부의 대물림에서 시작한 구조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기회의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포기해야 할까. 교육 불평등이 고용 불평등을 낳고, 다시 고용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을 강화하는 굴레를 끊을 수는 없을까.

김윤태 교수는 “임금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교육은 10%의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한 과잉투자이고, 이를 통해 획득한 학벌이 다시 차별을 강화한다”며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일정한 삶의 질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사회복지·보장 제도로 삶을 지탱해 줘야 과잉투자를 방지해 부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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