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이 가진 가장 큰 결함은 “노동자 권리”의 부재다.

175개에 달하는 법 조항을 눈 씻고 보아도 노동자 권리(대한민국 법률 용어로는 근로자 권리)라는 말은 없다. “사업주 등의 의무”를 규정한 법 5조 밑에 “근로자의 의무”를 규정한 6조가 자리한다. “근로자는 이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켜야 하며, 사업주 또는 근로감독관과 공단 등 관계인이 실시하는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조치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의 6조는 노동자를 일터 안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대하고 있다.

일터의 안전과 보건을 지키는 핵심인 ‘안전보건관리체제(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Management System)’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2장 어디에도 노동자의 참여나 권리에 관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2장은 “감독자” “관리자” “담당자” “전문기관” “산업보건의” “감독관” “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다채롭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에 명시된 사람과 기관이 하는 활동에 안전과 보건 문제의 당사자인 노동자가 참여할 권리를 언급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체제에서 노동자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혹자는 법 조항에 “근로자 대표”나 “근로자위원”이 명시돼 있지 않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선출되는지가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를 안전보건관리체제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관련법에 “근로자의 의무” 조항 대신 “근로자의 권리” 조항을 신설하고 안전보건관리체제 참가를 허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사례가 눈길을 끈다. 미국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인터넷 사이트에는 <노동자 권리(Workers’ Rights)>란 자료가 올라와 있다. 닉슨 행정부 때 만들어진 ‘1970년 직업안전보건법(OSH Act)’에 따른 노동자 권리를 알리기 위해서다. 법에 따라 일터의 안전보건과 관련해 노동자가 갖는 권리는 다음과 같다.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 대해 안전보건 감독을 신청할 권리, 사업장의 위험·위해 요소에 관한 정보를 받을 권리, 사업장에 적용되는 안전보건 기준에 관해 교육받을 권리, 사고·질병 예방법에 관해 교육받을 권리, 사업장에서 일어난 업무상재해와 질병에 관한 기록을 검토할 권리, 사업장의 위해 요소를 측정할 목적으로 행해진 검사 보고서와 감독 보고서를 받을 권리, 사업장 의무 기록지를 받을 권리, 직업안전보건청의 감독에 참여하고 감독관에게 개인적으로(in private) 말할 권리, 감독 요청이나 기타 법에 명시된 권리 행사를 이유로 사용자가 보복할 경우 직업안전보건청에 제소할 권리다.

일터에서의 안전과 보건이 노동자의 권리라면 동시에 사용자에게는 의무와 책임인 바, 직업안전보건청은 사용자가 지는 법적 책임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관련 법이 규정한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을 홍보하는 정부의 포스터를 눈에 잘 띄는 장소에 게시할 책임, 교육훈련·표식·화학물질 정보 등을 통해 위해 요소를 노동자에게 알릴 책임, (이주)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노동자를 교육할 책임, 업무상재해와 질병에 관한 기록을 정확하게 관리할 책임, 공기 샘플링 등 직업안전보건청 기준이 요구하는 검사를 수행할 책임, 청력 검사나 의료 검사를 제공할 책임, 노동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재해 및 질병 관련 데이터를 게시할 책임이다. 노동자 사망시 8시간 안에 직업안전보건청에 신고할 책임, 업무상재해나 질병으로 입원하거나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시력을 상실한 경우 24시간 안에 직업안전보건청에 신고할 책임, 업무상재해나 질병에 대해 관련 법에 따라 자기 권리를 행사한 노동자에게 보복을 가하지 않을 책임이다.

안전과 보건에서의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 미국 노동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의 알 권리’인 정보권(right to information)이다. ‘알 권리(right-to-know)’는 노동자 대표만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에게도 보장된다. 회사가 수집해 보유하고 있는 안전보건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을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개별 노동자에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의결사항, 안전보건진단 결과, 안전보건 개선계획,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업환경측정” 등에 관한 정보권 보장 대상을 실체가 불분명한 “근로자대표”로 제한해 놓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관심을 끄는 조항은 “감독기관에 대한 (근로자의) 신고”를 명시한 157조다. “사업장에서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사실이 있으면 근로자는 그 사실을 고용노동부 장관 또는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신고는 “이 법이나 이 법에 따른 명령”을 노동자가 충분히 알아야 가능할 텐데, 그럴 수 있는 노동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사업주는 신고를 이유로 해당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업주가 신고한 노동자에게 보복을 가한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미국의 직업안전보건법 내용이 빈약하고 법을 위반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 수준이 낮다는 미국 노동계의 비판이 있다. 하지만 안전과 보건 문제를 노동자의 의무를 넘어 노동자의 권리로 인정하고, 그 중심에 ‘노동자의 알 권리(정보권)’를 놓은 것은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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