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있다.

6석 정당이 180석 정당에 끌려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의석이 30배 많으면 정치력도 30배 넘게 크다. 자기보다 힘이 30배나 큰 상대와 씨름하면서 끌려다니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던 시절에도 ‘거대한 소수’ 전략은 주관적 관념론에 불과했다. ‘조직 노동’이라는 기반마저 상실한 정의당 처지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더불어민주당에 끌려다니는 게 답답한 일이기는 하나 창피할 일도 아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갖고 있다. 6석의 중력과 180석의 중력은 다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정의당도 더불어민주당 주위를 돌 수밖에 없다. 조직 노동이라는 기반이 없는 정의당이 대형 정당의 영향력이 미치는 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조직 노동(organised labour)’을 구태의연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필자가 생각해도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조직 노동 외에 정의당이 의지할 수 있는 조직된 세력은 없는듯 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를 뺀다면 세계 어느 나라나 조직에 성공한 세력은 노동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 여성’이나 ‘조직 청년’이란 존재한 적이 없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던 시절, 민주노동당의 일부 그룹은 민주노총이 기반한 대기업·정규직 노조를 혁파해야 할 개혁 대상으로 규정했다. 또 그들 중 소수는 민주노총을 대체할 ‘제3 노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을 동원해 민주노총 탈퇴 공작을 벌여 국민노총이라는 제3 노총을 만들기 몇 년 전 일이었다.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 주위를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펼쳐 나갈 수 있을까. 6석으로 법을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6석으로 법을 통과시킬 방법은 없으니 180석 민주당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100석 조금 넘게 가진 국민의힘에 기대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때도 열린우리당 2중대 소리가 듣기 싫어 박근혜가 이끌던 한나라당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지금 국민의힘보다 훨씬 합리적이었던 당시의 한나라당과 합작해서 민주노동당이 얻어 낸 입법 성과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에서 재벌 개혁이란 말이 안 나온 지 오래됐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교육 개혁은 물 건너갔고 ‘SKY 캐슬’은 더 견고해졌다. 집값은 오르고 불로소득은 넘쳐 나고 빈부격차도 심해졌다. 노동 개혁도 엉망진창이다. 코로나19라는 악재가 있으나, 보수적 자유주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성격을 고려할 때 정권 출범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있지만, 검찰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검찰총장 하나 자르지 못하는 대통령이다. 관료 지배 체제는 여전하고 그 옆에는 언론 권력이 서 있고, 그 뒤에는 재벌 권력이 버티고 있다. 미군을 한반도 안팎에 깔아 놓은 워싱턴 권력의 입김은 또 어떤가.

그랬기에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조직된 세력인 노동운동의 적극적 자세와 과감한 행보가 중요했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애초부터 예상했듯이 조직 노동은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당 지배 국가에 적용될 정치적 조합주의(political unionism)와 노동조합을 전위조직으로 보면서 파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설교하는 생디칼리즘, 그리고 미국식 실리적 조합주의(bread-and-butter unionism)가 뒤섞인 정파들이 ‘과잉 대표’된 지 오래다.

혹자는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다 같은 보수 정당이라 주장하지만, 필자는 의견을 달리한다.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라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는 물론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같은 자유민주주의조차 부정하는 극우다. 혹자는 검찰이 법치의 보루라고 주장하지만, 필자는 의견을 달리한다. 세력으로서 대한민국 검찰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의 원리를 부정하는 반민주·반민중 권력집단이다.

독일 하노버에 있는 역사박물관에서 1920년대와 30년대 정당들의 선거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눈길을 끈 것은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서로를 계급의 적이라 저주하는 내용이었다. 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을 나치의 동맹자로, 사회민주당은 공산당을 나치의 동맹자로 낙인 찍었다. 선거 결과는 나치당의 승리와 히틀러의 집권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당 강령에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명시했다. 소련과 북한식 국가 사회주의와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극복한다는 야심 찬 기획을 했다. 아무튼 사회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 논쟁과 상관없이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좌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 정의당은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 정당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의힘과의 사이에는 장강이, 보수적 자유주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사이에는 샛강보다 훨씬 크지만 장강보다는 훨씬 작은 강이 흐른다.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면 독자적인 중대를 꾸릴 수 있을까. 6명으론 분대도 꾸리기 힘들다. 조선일보는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라고 꼬드긴다. 민주노동당이 망할 때도 조선일보가 당을 위하는 척 훈수를 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히 취약하다. 조선총독부 권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며, 민족 모순은 계급 모순과 더불어 여전히 주요 모순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외 정세가 대단히 불안정해지고 있는 지금은 오십 보와 백 보 사이에 있는 그 오십 보의 차이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현 정세에서 오십 보나 백 보나 같다는 태도는 청산주의에 다름 아니다. 정의당이 진정 노동자·민중을 위한 당으로 성장하려 한다면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는 수모를 마다해선 안 된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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