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우리는 이 사회를 이대로 둬도 괜찮은지 질문하는 죽음들을 자주 만난다.

재난과 참사로 인한 죽음, 일터에서의 죽음, 아동학대로 인한 죽음, 가난과 경쟁으로 내몰린 이들의 죽음을 볼 때마다 분노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12년이 지난 올해에도 물류창고 건설노동자 40명이 화재로 죽임을 당했다. 이런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또다시 누군가가 죽게 된다. 그러하기에 사회적인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그 사건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부단히 제기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지켜보는 것이고, 찾아가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다. 전태일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이 전태일평전을 읽고, 전태일 열사가 묻혀 있는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가 마음을 다지고, 청계천5가의 전태일 동상 앞에서 집회를 하는 모든 일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기억되지 않는 죽음은 설령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잊혀진다. 금강휴게소 근처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 사망한 노동자 77명의 위령탑이 서 있다. 하지만 그 위령탑은 찾기도 어렵고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희생은 보이지도 않고 말해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적막한 위령탑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2018년 12월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했다.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서부발전의 책임을 물었고, 결국 합의에 이르렀다. 그 합의 내용에는 김용균 노동자를 기억하는 기념조형물 건립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2년이 돼가는 지금도 조형물은 건립되지 못하고 있다. 서부발전은 조형물의 크기와 위치를 문제 삼는다. 크기를 더 줄이라고 이야기하고 하청회사 앞에 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형물을 세우는 데에는 정규직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은 조형물의 크기나 위치 때문이 아니다. 서부발전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원하청으로 고용구조를 분리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는데도 서부발전은 여전히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떠민다. 그러니 조형물을 하청회사 앞에 세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김용균의 동료들은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2인1조를 하겠다더니 계약직으로 인원을 채우고 있다. 얼마 전 서부발전에서 스크류를 운반하던 하청 특수고용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에도 서부발전은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고 했다. 서부발전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지 않으려고 조형물을 거부하는 것이다.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는 커다란 굴뚝, 커다란 건물, 굉음을 내는 컨베이어벨트 등 노동자 개인을 압도하는 구조물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위축되고 무기력해진다. 김용균과 동료들은 위험한 현장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목소리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김용균이 죽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 동료들은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 용기로 김용균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현장의 문제를 폭로했다. 김용균의 추모조형물을 만드려는 이유는 어떤 슬픈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용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매우 작은 노동자들이지만 말하고 행동하며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싸워 왔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다.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 용광로에 20대 청년이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시인 제페토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글을 남겼다. 하림이 그 글로 노래를 만들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기 위한 마음을 담아 많은 이들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빚고 그 쇳물 부어서 정문 앞에 세워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게, 회사가 노동자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추모조형물은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세워야 한다. 그 엄마와 동료들, 그리고 이 죽음을 기억하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 모두가 쓰다듬어 볼 수 있도록. 김용균의 조형물은 2주기가 되기 전에 원래 약속대로 원래의 공간에 원래의 모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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