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재단

“이번 추석 때 뭐해요? 애 아빠가 없는 명절이 힘들어요.”
“동준이 가고 난 후엔 나도 명절이 힘들어.”
“우리도 한빛이가 가고 나서 명절 차례는 안 지내기로 했어.”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가족들이 추석을 앞두고 나눈 일상 대화들….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끌벅적한 명절이 누군가에는 가슴 미어지는 날이다. 가족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한 후로 명절은 화목보다는 ‘빈자리’를 실감하는 날이다. 추석을 마치고 난 후의 대화도 비슷했다. 동준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서 먹었다는 강석경씨, 한빛이가 생각나서 집에서 보내기 어려웠다는 이용관씨, 명절을 앞두고 모란공원에 가서 용균이를 보고 왔다는 김미숙씨. 피해가족들에게 산재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픔과 슬픔이 일상을 잠식하며 생을 흔들어 버리는 사건이 되곤 한다.

용균이가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산재사건이 남은 가족들의 일생을 흔드는 것은 단지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만은 아니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고 제대로 해명(규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사건에서 사법정의는 보기 어렵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가족이 온 힘을 기울여야 가능한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을 쏟다 보면 어느새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서 멀어져 버린다.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사회 제도와 구조로 가족들의 고통은 배가된다.

실제 산재로 인해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고작 2.2%(2018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현장소장 등 말단 직원이다. 안전을 방기하고 위험을 방치한 기업주들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고통은커녕 별다른 불이익도 크게 겪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다시는’ 가족들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일이다.

2018년 겨울 발전 비정규직 고 김용균님의 사망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산재 사망사건이었음에도 2년이 다 돼서야 기소됐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진상조사특별위원회도 구성돼 권고도 했으나 책임자는 처벌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원·하청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1인 시위와 여러 번의 기자회견을 하며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은 덕이다. 김태규님의 누나 김도현씨와 김동준님의 어머니 강석경씨도 관할 검찰청이 있는 서산까지 가서 1인 시위를 했다. 처벌받지 않은 한국서부발전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험요인을 개선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올해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또 다른 김용균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8월3일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원청인 서부발전 대표이사 등 임직원 9명, 하청업체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 그리고 원·하청 각 회사를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청노동자인 김용균의 죽음에 대해 원청인 서부발전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김미숙씨는 혹시나 원청 대표이사가 기소에서 제외될까 걱정했다며, 처벌받는다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 했다. 현장관리자만이 아니라 원·하청 대표이사, 기술전무까지 기소됐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처벌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재판을 앞둔 김미숙씨는 도통 꿈에 나타나지 않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꿈에 나타나서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용균이어도 웃는 얼굴은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요. 험악하게 죽기도 했고, 엄마 아빠 인생도 이 모양 이 꼴로 사니까…. 제가 아무리 의미 있는 활동을 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원·하청 책임자까지 처벌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 용균이도 손톱만큼은 편하지 않을까. 예전처럼 환한 인사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웃어주지 않을까….”

건설현장 추락사에 현장관리자만 실형선고

사실 기소는 시작일 뿐이다. 재판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김미숙씨는 김태규 사건 재판 때 처음으로 법정이란 곳에 갔다. 그의 말마따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살면서 법정에 갈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는 피의자들과 피해자인 유족들이 한 법정에 선 모습에서, 가족들의 억울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했다. 김도현씨는 재판정에서 떳떳해 보이는 피의자들의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김태규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던 6월19일 ‘다시는’ 성원들이 총출동했다. 판사가 심리 중에 “건설노동자의 추락 사고는 흔하지 않냐”고 망언을 해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릴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수원지법 앞에서 대책위 사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신현숙씨는 판사의 말에 집중했으나 판사의 판결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판사가 너무나 생소한 말들을 너무나 작게 말하는 통에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도 도무지 선고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피고인들인 시공사와 건설사 직원들은 법정에서 구속되지도 않았다.

‘집행유예는 아닌데….’ 어리둥절한 상태로 재판정을 나왔다. “법정 구속은 아니지만 실형을 내렸어요.” 담당인 정병욱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서야 실형이 선고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다시는’ 성원들은 다행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사죄할 시간적 여유를 주려고 유예기간을 둔 실형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건설노동자 추락사건에서는 실형 선고가 거의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큰 성과다. 가족들과 대책위가 이곳저곳을 뛰어다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된 결과다. 30세의 젊은 김도현씨가 생계를 뒤로 한 채, 아니 일상이 깨진 상태로 삶을 내던진 결과다. 동생을 죽게 만든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증거를 직접 찾아 경찰서와 검찰청 등을 뛰어다녀 불기소 처분을 바꿔 재판까지 온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에 벌금 700만원을, 안전보건총괄책임을 맡은 현장소장 김아무개에게는 징역 1년을, 승강기 운용자인 현장 차장 문아무개에게는 징역 10월을, 승강기제조업자인 이아무개에게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고작 700만원의 벌금이라니!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268조)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으나 재판부는 법정 최고형을 내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실형을 받은 사람은 기업경영주가 아니라 현장소장일 뿐이다. 24세의 청년의 목숨을 앗아 간 참사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매우 가벼운 형량이다. 김도현씨의 “매일 한 명씩 떨어지는 사고가 반복되는 데에는 솜방망이 처벌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은 현재진행형이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1심이 끝났다고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해자들은 항소했고 아직도 재판은 재개되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재판은 무한정 연기되고 있다. 요즘 김도현씨의 아침은 재판일정 앱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항소로 시간을 벌었다. 그 결과 실형 선고임에도 책임자들은 버젓이 달라지지 않은 일상생활을 누린다. 무엇보다 재판이 지연될수록 피해 가족들의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김도현씨는 책임자가 하루라도 실형을 살면서 참회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희망한다.

“우리 태규는 광고에 나오듯이 ‘다녀올게’라는 인사말을 회사 때문에 지킬 수가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일하러 갔다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처벌한다면 안전을 경시하는 회사의 태도도 바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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