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민주노총의 20대 세력규합 차단” “민주노총의 3.27. 총력투쟁 선포대회 무력화 추진” “민주노총 신집행부의 취약한 리더십 계기 무력화 추진” “민주노총의 외국인 근로자 조직화 강력 차단” “민주노총의 무노조 대기업 겨냥 조직화 기도에 적극 대처” “민주노총의 삼성 등 대기업 하청업체 대상 세규합 무력화” “금속노조의 대기업 사내하청 노조 세 확대에 엄정 대처”….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문서 제목이다. 노조혐오증에 사로잡힌 어떤 시정잡배가 일기장에 갈겨쓴 공상의 제목이면 참 좋았으련만, 애석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위와 같은 제목의 문서는 2010년 2월부터 12월까지 국가정보원 국익전략실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로 보낸 176건 공식 보고서 제목이다. 즉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이 노조파괴 공작을 획책하고 실행한 내역이 담긴 정부 공식 문건의 제목인 것이다.

원세훈을 필두로 한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 간부들, 고용노동부 고위 공무원들은 이른바 일련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올해 초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이후 불복을 하더니만, 항소심에서도 여전히 유죄 판결이 유지됐다. 국정원은 위 형사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내부 감찰자료를 송부해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이 민주노총·전교조·전국공무원노조를 이른바 “3대 종북좌파 세력”으로 분류해 노조파괴 공작을 실행한 점, 민주노총 산하 수많은 하부조직의 탈되를 유도한 점 등을 자인하기도 했다. 문제는 노조파괴 공작에 관한 완벽한 진상이 아직까지도 온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원세훈 등에 대한 1심 판결 선고 이후 언론에는 대대적으로 국정원 노조파괴 공작에 관한 내용이 보도됐다. 그러나 국정원은,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정보기관이 노동조합을 국가의 주적으로 삼아 탄압했다는,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부끄러운 역사가 드러났음에도 국정원과 정부는 제대로 된 입장발표조차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국가기관이라면, 정상적인 정부라면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진상을 공개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약속할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과 이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노조파괴에 관한 진상이 “일부” 공개됐지만, 아직도 베일에 쌓인 비밀이 많다. 가령 이 칼럼 서두에서 언급한 국정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보낸 176건의 문건이 그렇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해당 문건 전문을 확인하지 못했다. 해당 문건은 검찰이 별건 혐의와 관련해 대통령 기록관실을 압수수색하던 중 국정원이 청와대에 발신한 문서 목록만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은 176건의 노조파괴 공작 문건 중 국정원에 11개 문서 송부를 신청해 9건의 문서만을 확보했다. 즉 나머지 167건의 문서는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온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민주노총 법률원은 국정원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던 중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통해 대한민국에 176건 문서의 온전한 공개를 요청했다. 대한민국은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 신청의 적법 여부를 다퉜다. 일개 사인(私人)도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노조파괴 공작의 진상을, 그것도 직접적인 피해자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다퉈보겠다고 한다. 국민에게 진상을 밝힐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국가기관이니까, 그런 정부니까 노조파괴에 관한 수많은 언론보도에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것이다.

유감스러움을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 사과조차 하지 않는 노동존중 정부지만, 사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상공개다. 국정원이 노조파괴 공작을 자행하면서 청와대에 보고한 176건의 문건은 명백히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작성 자체로 위법한 문서다.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이 노조파괴 공작을 자행하며 작성했던 모든 문서의 공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 될 노조파괴 공작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모든 국정원의 위법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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