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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소장을 작성하며]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노동자의 자유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 한 금융기관을 상대로 하는 소장을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했다.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노동자들이 은행에 삭감된 임금을 청구하는 사건이었다. 지난해 11월, 지방공기업 문경레저타운 노동자를 대리해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삭감된 임금을 청구했던 사건에 관해서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 뒤에 상담이 잇달았다.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삭감됐던 게 부당하다는 상담이었다. 노동자들의 소속 사업장과 사연은 달라도 부당하게 삭감됐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적용해서 임금을 삭감했다는 것에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동안 상담했던 사업장 사례를 살펴보면, 부당하다며 노동자들이 억울해 하는 것은 자신의 임금을 삭감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삭감됐다는 점이다.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자들은 대부분 조합원 범위에서 배제돼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사용자는 해당 사업장의 과반수노조와 합의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적용했다. 대상자들에게는 묻지도 않았다. 사용자는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얻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서 당연하게 적용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자신의 의사로 받아들였으니 해당 사업장의 과반수노조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과반수노조의 의사를 묻고 동의를 받았다며 해당 사업장의 사용자는 당연히 할 말이 있겠지만, 대상 노동자들도 할 말이 없을 수 없다. 상담을 해 보니,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자로 취급됐을 뿐이고, 임금피크제를 적용함에 있어서 할 말을 구해야 할 사람으로는 취급되지 않았으니 할 말은 많았다.

2. 임금은 근로계약의 주요 내용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에 근로를 제공하는 이유고, 오늘도 노동자가 이 자본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없으면 근로계약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자 간 자유로운 의사로 체결하는 계약인 근로계약 내용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그에 대한 노동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사용자가 정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가 없다. 아무리 해당 사업장에서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라도,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의 의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체결한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 수준보다 우월한 것도 아닌데, 과반수노조와 합의해서 임금 수준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근로계약도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근대의 계약이라도 떠들어 대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오늘까지 노동자 권리를 두고서 벌여 왔던 노사관계가 끔찍하다. 자유는 없었다. 근로계약 관계에서 노동자에겐 자유가 없었다. 우리 노동현장에서, 수만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를 가지고 사용자와 결정한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온갖 계약이 당사자 간 자유의사로 결정된다고 해도, 근로계약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자유라고 해도, 노동자는 자신의 계약 내용을 정할 자유가 없었다. 결코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사람이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근로자’로 사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자신의 의사로 결정할 자유가 없었다. 사용자가 정한 각종 규정 등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됐다. 오늘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임금이 삭감되는 것은 노동자가 바로 이렇게 자유 없는 ‘근로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이렇게 근로기준법 4조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자유의사로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해야 한다고 당당히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이 법규정을 읽는다면, 아마도 자신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지 물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의 의사는 묻지 않고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자신의 임금이 삭감됐다며 도대체가 무슨 자유냐고,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고 분명히 물을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가 회사 규정으로 도입된 것인지를 살펴, 근로기준법에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쳐 유효하게 도입된 것인지에 따라 대답할 것인가.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라면 임금·단체협약까지 살펴보고서 대답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이런 방식으로 대답을 찾는다면 내가 꼭 해 줄 말이 있다. 당신의 대답은 사용자가 하는 것과 같다고. 실제로 그랬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고 판결했던 사업장의 사용자가 했던 대답이었다.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얻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니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에 관한 회사규정은 취업규칙인 것이고, 기존 임금을 저하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라서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대로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받았으니 사업장 노동자들에 적용할 수 있다고 사용자는 줄곧 주장했다. 과반수노조가 존재하지 않은 경우라면 사용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을 것이고, 역시 근로기준법에 따라 적법하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한 것이니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적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용자와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노동자는 없다.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의사가 있을 뿐, 노동자의 자유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으로 취급하지 않는 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도 아닌데, 동의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가 체결한 근로계약에서 정한 것인 양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 소장에서 나는, “임금피크제가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고 이에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라 집단적 동의를 득했다고 할지라도 이는 절차적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유효하게 존속하는 근로계약(연봉계약)의 변경을 결하고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4조 근로조건의 자유 결정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문경레저타운 사건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서 과반수노조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근로조건의 자유 결정을 선언한 근로기준법 4조에 따라 노동자와 체결한 근로계약 변경 없이 그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사라졌던 노동자의 자유를 찾아 낸 대법원 판결이기에 이러한 판례 태도에 부합하게 원고들의 청구를 인정해 달라고, 원고대리인 변호사로서 소장에 썼다. 이렇게 소장을 작성하면서도 마음을 한편으론 편치 않았다.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인 양 판단해 왔던 수많은 판결이 떠올랐다. 노동자의 자유의사 여부를 떠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쳤는지에 따라 판단했던 법원판결이 이 나라에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숲에서 노동자가 자유를 주장하는 일, 찾기 어렵다. 내가 대리했던 문경레저타운 노동자처럼, 사용자에 당당히 자유를 주장하며 다툰 경우는 많지가 않다. 사업장에서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사용자가 적용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사용자가 하라는 대로 근로계약을 작성해 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말해야 할 노조는 자신이 동의한 탓에 그 취업규칙을 두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의해 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노조를 본 적이 없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함에 있어서는 과반수노조 동의를 거치도록 법이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니 사용자는 그에 따라 사업장에서 노동자 권리를 삭감하는 것인데, 노조는 침묵으로 동의한다. 그렇게 취업규칙은 법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자유를 잃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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