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서울특별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이 사과하는 데만 8년이 걸렸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공식 인정한 지 지난달 31일로 9년이 됐다. 정부는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과 시행령을 제·개정하는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1일 환경부가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3일까지 재입법예고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하위법령 개정안은 오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환경부 “피해 심사 속도와 요양생활수당 올려”

환경부가 재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피해지원 확대가 뼈대다. 피해 판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 입법예고안은 특정요건을 충족하면 피해자로 인정하는 요건심사와,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개별심사로 구분했다. 이번 안에는 원칙적으로 개별심사하되,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판단이 가능한 경우 신속심사하는 방법으로 바꿨다.

피해정도가 심각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요양생활수당을 5단계로 개정해 최대 월 142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했다. 지원 유효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재심에 따라 유효기간을 갱신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부는 “지난 7월3일에 입법예고했지만 특별유족조위금 및 요양생활수당 상향, 피해지원 유효기간 폐지·연장 등 각계에서 제시된 의견을 수렴했다”며 재입법예고 배경을 밝혔다.

“피해인정 신청자 절반은 신속심사 못 받아,
요양생활수당은 장해급여와 병행 안 돼”


특조위는 문제 해결까지는 여전히 멀었다고 보고 있다. 피해인정 신청자 절반이 신속한 심사를 받지 못할 것이고, 요양생활수당은 장해급여와 같이 받을 수 없다는 이유다.

피해 판정체계의 경우 피해인정 신청자 중 절반 이상이 개별심사를 받고, 이들에 대한 심사 기준과 향후 일정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4일 기준 전체 피해인정 신청자는 6천837명이고, 이중 종전에 피해판정을 받은 3천169명을 제외한 나머지 3천668명은 개별심사 대상이다. 이들에 대한 심사 기준과 일정은 제시되지 않았다. 사적참사위 조사에 따르면 폐질환의 경우 피해인정 신청에서 판정까지 평균 283일에서 526일까지 소요된다.

특조위는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후 질환이 발생·악화된 피해자 중 전적으로 다른 원인으로 입증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빠르게 지원하고, 나머지 질환에 대해서만 개별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양생활수당이 올랐지만 요양생활수당과 장해수당 중 하나만 받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해급여는 노동자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치유된 후 신체 등에 장해가 있는 경우 지급하는 산재보험급여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장해급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요양수당과 중복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같은 성질의 수당을 중복해서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지영 특조위 과장은 “장해급여는 노동자가 장해를 가지지 않았다면 일생 동안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일실이익이고 요양생활수당은 피해 지원이 충분히 되도록 정부와 기업이 지원하는 수당”이라며 “취지에 맞게 둘 다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다. 가습기 피해자 특성상 평생 치료가 계속되는 경우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요양생활수당을 포기하고 장해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조위는 “환경부는 여전히 최소한의 지원만 하고 나머지는 개인과 기업이 해결하라는 자세를 보인다”며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잔존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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