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을 때는 돌아볼 여유가 없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더라도 그 문제의 해결을 미루게 된다.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가 생기더라도 그건 일종의 부작용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런 부작용은 늘 발생하는 일로 취급된다. 경쟁 중에 긴 시간을 들여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성을 들여 고친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한가한 자들의 소리가 되고 만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코로나19가 끝난 이후의 세상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질주를 멈춘 세상은 그 자체로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다시 달릴 때는 어떠한 모습이 돼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것을 상상할 준비조차 안 돼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제기되고 있는 갖가지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그 방향성을 살펴보는 일도 필요한 일이 되고 있다. 서둘러 덧붙이면 이 글은 그 작업의 일환은 아니다.

끊임없이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앞서 달려 나가는 것만 진보는 아니다. 실제로는 방향과 속도가 핵심이다. 방향은 사람들이 늘 고민하고 주장하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속도도 중요하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진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속도를 줄여야 제대로 보이고 처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사회 시스템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여러 사회 시스템을 비교할 수도 있게 됐고, 우리 시스템 내부를 살펴보는 기회도 생겼다. 내부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의 핵심은 그동안 가려져 있거나 애써 무시했던 부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문제가 드러난다는 의미는 그에 대한 문제 인식이 사회적 공감을 얻기 쉽다는 뜻이다.

현재 시스템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단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특히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처방이 먹혀들어 가지 않는 곳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복지는 약화되고 대신 사회안전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오래됐지만, 이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점검할 수 있게 됐다.

산업구조와 노동형태 변화로 기존 사회보험제도가 허술한 안전망이 됐지만, 지금까지 이를 제대로 고치지 못했다. 사회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됐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로 미뤄 왔다. 현행 제도로는 자신의 노동이력을 증명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많다. 형식으로는 자영업자지만, 실제로는 평균적인 노동자 삶의 수준보다 어려운 이들도 많다. 이들의 삶 역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삶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는 이들을 사회보장 울타리 밖에 세워두고 있다.

최근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논의가 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여당은 ‘전 국민’이 아니라 일부 국민에 한정해,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에 대한 제도적 설계조차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많은 요구 중에서 가능한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는 시스템을 제대로 점검하고 혁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한민국을 새롭게 개조할 수 있는 기회로까지 칭하면서도, 정작 기술 발전에 따른 제도적 불합치를 제대로 탐구하는 모습은 엿보기 힘들다. 제도의 내적 합리성에 대한 의문은 많지 않고, 손쉽게 규제 풀이로만 접근한다. 노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일자리 문제로만 인식할 뿐,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격상해 논의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즉 특정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형태로 보면 이는 대단히 불합리하다.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특정한 공간에서 일을 하거나, 또는 특정한 공간조차도 없이 타인을 위해 일하면서 경제적 대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노동에 실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요건으로 노동을 틀 지워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개념은 포괄적으로 정의해야 하고,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노동자로 간주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조합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 가입하면 노조가 아니라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탈피해야 함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노동자로서 법적 또는 제도적 지위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특수한 경우를 인정해 노동이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조심스레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조나 이에 준하는 조직의 조합원이 되고, 또 해당 조직에서 인정하면 노동자로 간주해 제도적 보호를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외국 사례처럼 노조가 직접 고용보험을 운용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노조가 조합원의 노동이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전 국민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개념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시스템 개혁의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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