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한 노동자에게 발병한 혈액암을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본 근로복지공단 처분이 잘못됐다는 1심 재판 결과가 나왔다.

4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김아무개(사망당시 52세)씨 유가족이 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1년 3월부터 반도체 관련 전자부품 A업체에서 일한 김씨는 2014년 8월 혈액암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보름 만인 같은해 9월 숨졌다. 유가족은 작업 중 유해물질에 노출돼 발병했다며 2015년 10월 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공단은 발병과 작업현장과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재심사 청구까지 기각했다. 유가족은 2018년 7월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김씨가 보호구도 없이 일하며 다양한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역학조사에서 확인된 톨루엔·자일렌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비호지킨 림프종 유발원인지 의학적 연구가 부족하더라도 법적·규범적 인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유해물질과 발병과의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씨의 아내 황아무개씨는 반올림을 통해 “남편의 질병에 대한 인과관계를 밝히고 증명하는 책임은 힘없고 전문적 지식이 전혀 없는 가족의 몫이었다”며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쓰러진 지 한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난 남편의 죽음이 산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해 중 하나임이 밝혀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단측은 “검찰 지휘 결과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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