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문제는 보건의료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지난해 7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의료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라며 원격의료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자료사진 최나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산업육성을 이유로 정부가 원격의료 확대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면서 보건의료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원격의료로 둔갑

17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을 막고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는 정부정책이 엉뚱하게도 원격의료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 진료 상담·처방하는 원격의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2월 정부는 한시적으로 만성질환자 등에 한정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일반 환자들의 병원 출입을 줄여 코로나19 병원 내 감염 확산을 억제하겠다는 이유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월24일에서 이달 10일까지 코로나19 전화상담·처방은 26만2천121건이나 된다. 앞으로도 코로나19 비대면 진료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논리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2차 코로나19 위기에 대비해 관련 인프라를 충분히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비대면 진료 확대는 원격의료산업 육성 논리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7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3대 프로젝트 및 10대 중점과제’에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대응을 위한 비대면 산업 육성이 포함돼 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화상연계 방문건강관리 같은 기존 디지털 기반 비대면의료 시범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위해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원격의료 확대정책은 힘을 받는 형국이다.

이후 김연명 청와대 정무수석·정세균 국무총리·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원격의료 확대에 대한 긍정적 입장이나 제도개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의료기기·IT업체 배만 불릴 것”

하지만 비대면 진료나 원격의료를 늘려 코로나19 감염을 막거나 방역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논리를 반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비대면 진료라는 말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원격의료를 반대했기 때문에 말 바꾸기를 위해 쓰는 단어”라며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꼬았다. 그는 “20년간 원격의료가 시행되지 않은 이유는 환자의 몸을 직접 보고, 만지고, 두드리고, 들어서 진찰하지 못하기에 안정성과 유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의료를 산업논리로 접근하면 의료비가 상승해 국민 생명권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비판했다.

의료노련은 지난 15일 성명에서 “바이러스 전염을 우려해 병원을 찾지 않는 예비환자나 만성질환자 건강관리는 1차 의료기관이나 보건소 등 지역의료기관에서 접근할 의료정책”이라며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벽지와 오지의 환자를 돌봐야 하기에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면, 공공의료시설과 의료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꼬집었다.

원격의료 확대가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원격의료는 감염병을 막지도, 진단하지도, 치료하지도 못한다”며 “의료기기업체와 IT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동본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라는 한계가 명확해 진료 질을 담보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 소지도 불명확하다”며 “코로나19라는 현재 진행형 국가적 재난을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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