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하신 전태일 열사 49주기에 20대 청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대구의 한 제지공장에 입사해서 아무런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 투입됐고, 야간근무 중 종이를 감아올리는 기계에서 종이가 찢어져서 이음부를 표시하려다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청년노동자의 죽음이 허망하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교육이 실시되지 않았고 안전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장 산재예방을 관리·감독할 고용노동부 사업장 점검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무슨 공식처럼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일진다이아몬드공장에 금속노조 지회가 설립됐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사업장으로 생산직과 관리직을 포함해 300명이 넘는 사업장이다.

일진다이아몬드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최저임금법 제도를 악용해 두 차례에 걸쳐서 상여금을 일방적으로 기본급화하면서 5년간 임금이 동결됐고, 다른 하나는 황산·염산·질산 등 수많은 화학물질과 특별관리대상물질·관리대상물질을 사용함에도 기본적인 국소배기장치도 설치되지 않은 환경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조합원들이 노동부 충주지청에 4월부터 수차례 위험상황신고를 했음에도, 충주지청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면담자리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일진다이아몬드는 300명이 넘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안전보건시스템이 작동될 것이고, 관내에 있는 중소·영세 사업장을 관리·감독할 인력도 부족하다는 핑계로 일관했다. 노조는 전면파업 이후 매일 노동부 충주지청 앞에서 선전전과 집회 등을 하면서 일진다이아몬드에 대한 사업장 점검을 요구했다. 수십 건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기자회견도 하며 면담을 요구했다. 그 후 충주지청은 7월이 돼서야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일진다이아몬드 공장도 안전보건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진행되거나 점검되지 않았다. 정기안전교육은 부실하게 실시됐고 심지어 야간조 근무를 하는 조합원들은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또한 암을 유발하거나, 생식독성을 유발하는 관리대상물질 등 16시간의 특별안전교육을 해야 하는 공정 대상자들에게 교육은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해당 공정에서 관리대상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어떠한 위험이 있고,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각 공정에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되지 않거나 설치돼 있더라도 법정 제어풍속이 유지되지 않으면서 분진과 유해가스가 인체에 그대로 노출되는 작업을 10년 넘게 해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조차 하지 않았지만, 회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가 해당 사업장에 와서 점검만 했더라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동안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의 건강상 피해는 누구의 책임이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의문이다.

2016년 12월27일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산재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방지하도록 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된 지 2년이 넘었지만, 해당 법률이 지켜지도록 하는 행정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사업장에서 산재 피해자들이 유형과 무형의 불이익 처우를 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가 종결됐음에도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서나 진단서를 요구하면서 노동자를 복귀시키지 않거나, 산재를 신청한 이후부터 강제휴직 혹은 업무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진정이나 고발을 하려고 해도 노동부는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기에 진정서나 고발장을 접수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산재예방은 사업장이나 지역에서 사고나 질병이 발생할 위험성과 가능성을 제거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고, 제거되지 않은 위험성과 가능성으로 인해 사고나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재발되지 않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산재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와 관련해서 법 개정 취지를 반영해서, 근로감독관집무규정 등 행정관청의 예규나 규정을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산재예방과와 담당근로감독관의 권한과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건강을 지키는 교두보이자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노동부 본부의 지시와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 상황에서는 안전과 보건에 대한 소신행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사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모르거나 알아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형해화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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