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올 4차 산업혁명. 사람 혹은 노동에 기반을 두지 않은 4차 산업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사회를 탈바꿈시킬 주체가 사람이고, 그 결과물을 누려야 하는 주체 또한 사람이어서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은 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산업혁명

다니엘 부어 독일 튀빙겐대 교수(정책분석·정치경제학)는 이날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노동 4.0’ 기조강연에서 “산업 4.0(4차 산업혁명)은 노동 4.0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며 “디지털화의 가장 큰 잠재력은 ‘참여를 통한 혁신’이고 사람은 이 혁신을 주도할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산업 4.0과 노동 4.0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전문가집단 연구와 노사정 대화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새로운 시대의 노동을 전망하는 노동 4.0 백서 초안이 발간되면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부어 교수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재화와 서비스가 지능형 기계(인공지능)와 접목되면서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이용이 가능해진다. 각종 재화(제품)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이 더 싼 가격에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은 유해하거나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고 덜 중요한 업무에서 해방된다. 이로 인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실현되고 사회 잠재력도 크게 향상된다.

반면 디지털·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인간에게 위협이다.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노동이 가능해지면서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노동의 탈경계화도 우려할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카카오톡 업무지시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핵심노동과 비핵심노동으로 노동시장이 나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

부어 교수는 “인간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라며 “노동자 참여로 기업의 혁신 잠재력을 일깨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경제적 차원의 잠재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생애주기에 따른 근로시간모델 개발을 통한 유연성 보장과 사회보험 확대 같은 민감한 문제를 조율해야 한다”며 “북유럽 국가 사례를 살펴볼 때 높은 수준의 사회적 표준(사회보장)은 경제성장 장애요소가 아니라 혁신 잠재력 개발의 토대였다는 사실은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노동존폐 아닌 노동방식 변화가 핵심

사무엘 그레프 독일 카셀대 교수(사회과학대)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그레프 교수는 ‘노동 4.0을 위한 새로운 노동정책-독일의 정책 대응’ 주제발표에서 △대규모 고용축소 △노동의 탈경계화 △새로운 노동형태의 등장과 사회보장 부재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세 가지 위험요소로 지목했다.

그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직업능력을 향상할 직업교육 강화 △선택근무시간법·접속차단 권리 보장을 포함한 노동유연성 수요에 대한 공정한 절충안 마련 △1인 자영업·특수고용직 증가에 따른 노동권·사회보장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레프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는 노동 없는 사회, 즉 미래 노동의 존폐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핵심 이슈로 다뤄야 한다”며 “기술적 혁신과 함께 사회적 혁신이 동반돼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해관계자를 다방면에서 고려하고 참여시켜 정책 대응방안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디지털화가 가져올 위험요소는 낮추고 동시에 주어지는 기회는 잘 활용하면서 필요한 제반 여건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디지털 기술의 발전, 즉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 발전을 어떻게 활용해, 미래 노동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의과제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 확보 △기업규모·원하청·고용형태 간 격차 없는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 △디지털 시대에 맞는 근로자대표제도 개편 △일과 가정의 균형을 실현하기 위한 근무형태 다양화 △감정노동·정신건강을 포함한 안전한 노동세계 구축을 꼽았다.

그는 “한국 사회 노동 4.0은 일자리와 노동의 존엄이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닥쳐올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노동정책 행위자인 노사정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철학·방향 정하는 사회적 합의 필요

독일 노조간부들은 디지털화가 노동현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영향을 확대하기 위해 노사 간 대화와 공동정책 개발을 통한 사전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쇠렌 툴레바이트 독일 광산화학에너지노조 노동정책국장은 “노동세계의 디지털화로 인해 오늘날 생산공정의 인터페이스가 간소화했고 공정 전반의 효율적 운영이 이미 상당수 진행된 상태”라며 “독일 노동계는 디지털 변화 시대에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독일이 시행하는 작업장 내 직장평의회와 노사가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에 초점을 맞췄다. 툴레바이트 국장은 “독일 노동계는 신기술 도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며 “직장평의회와 공동결정제도를 통해 작업장 디지털화 초기부터 개입해 양질의 일자리 유지·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바라 수섹 독일 통합서비스노조 혁신과좋은노동국장은 “기술을 위해 사람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기술이 쓰여야 하고 기술은 노동자 요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의미의 좋은 디지털 노동을 산별협약과 기업별 협약, 모든 노조활동에서 구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한국의 자동화는 노동자 숙련 배제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높이고 간접부서는 외주화하는 경향이 짙다”며 “분권화·자율화·네트워킹을 주된 목표로 하는 독일의 접근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이 계속 도입되고 있지만 국가와 산업계, 노조 합의에 의한 장기적 전망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더 많은 민주화, 더 좋은 일자리를 목표로 산업 차원의 이해당사자 거버넌스를 구축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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