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흔드는 검은 손] 난립한 전문건설업체, 불법 하도급·간접고용 온상

‘인력공급’ 혐의 크지만 현황도 몰라 … 건설업 2명 중 1명은 소속 외 근로자

2023-05-10     이재 기자

최근 전문건설협회 누리집에 올라온 양도·양수 공고에 따르면 경남 진주에 소재한 A건설사는 지난달 29일부로 같은 지역에 소재한 또 다른 B건설사에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 라이선스를 양도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철근콘크리트 라이선스의 등록과 이전을 위해서는 자본금 1억5천만원을 갖고 있어야 하고, 건설기술진흥법이나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관련 기술자를 2명 이상 둬야 한다. A·B사는 이를 모두 충족한 상태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두 법인의 대표자와 소재지가 완전히 같다는 것이다. 대표 전화번호마저 같다. 한 대표자가 운영하는 두 개의 다른 법인인 셈이다.

건설노동자 직접고용 않는 구조
건설산업기본법도 3단계 도급 ‘용인’

9일 <매일노동뉴스>가 전문건설협회 양도·양수 공고를 살펴본 결과 이곳뿐 아니라 상당수가 이처럼 같은 대표자가 법인만 바꾸는 방식으로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한 내용이었다. 소속 기술자는 아예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정부가 내놓는 건설업 관련 통계 가운데 건설업체의 규모에 따른 통계는 없어 이처럼 사실상의 1인 기업으로 보이는 사업체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길은 없다.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지만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처럼 상호만 바꿔 달아 영업을 하는 업체는 시공 업무가 아닌 노동자 공급 업무를 하는 ‘인력 도급업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을 근절하겠다며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를 문제 삼고 있지만 정작 조합원 채용 요구가 발생하게 만드는 불법 구조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만연한 불법 하도급 구조 아래 상시 고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건설노동자에게 이런 요구는 생존권 요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산업에서 하도급은 필연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은 발주처-도급(수급인)-하도급(하수급인)-건설노동자의 3단계 구조를 합법으로 본다. 수급인은 세간에 잘 알려진 굵직한 대기업 건설사다. 이들은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대신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공사계약을 후려쳐 다시 몇 개로 쪼개 하도급을 붙인다. 하수급인은 전문건설업체들이다. 이들은 전문건설 영역에 대한 라이선스를 보유한 채 이런 하도급계약에 응찰한다. 낙찰을 받아도 발주처가 처음 제시한 돈보다는 깎인다. 지난해 광주 학동 아파트 철거현장 붕괴 참사 당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발주처가 내건 공사액은 1평당 28만원이지만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실제 공사를 진행한 하도급업체가 받아든 공사액은 1평당 4만원이었다.

4단계 이상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끼리 나눠먹기

문제는 이들 전문건설업체도 직접 건설노동자를 고용해 공사를 하지 않고 또 다시 하도급을 준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는 불법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설업행정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이미 업체 279곳이 불법 하도급을 하다 적발됐다.

이런 구조에서 건설업 노동자 가운데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고용형태 공시 결과에 따르면 건설업 노동자 100명 중 47명(47.3%)은 소속 외 근로자다. 소속 외 근로자란 고용형태 공시 기업(건설업은 232곳)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채 일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실체를 알아보기 힘든 전문건설업체가 건설현장 비정규직 채용과 불법 하도급의 온상인 셈이다.

최근에는 좀더 은밀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4단계 이상 하도급에 따른 적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하도급을 받은 하수급인에 또 다른 전문건설업체 사장이 단기간 ‘이사’ ‘실장’ 같은 형태로 채용돼 임원 직함을 달고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도급계약에 따른 도급액이 아니라 고용계약에 따른 인건비를 받기 때문에 불법 하도급 적발을 비껴갈 수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전문건설업 라이선스를 스스로 주고받는 행태가 이런 유령 전문건설업체로 짐작할 수 있다”며 “건설현장에서 누가 불법 하도급을 저지르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만 단기간 고용계약이 반복하는 구조상 이런 행태를 적극적으로 문제삼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