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무늬만 ‘노사 법치주의’ 실상은 ‘노조 무력화’

‘친기업·반노동’ 일관, 노정 관계 악화 일로 … 노동계 “일방적 노동개혁 역주행”

2023-05-09     홍준표 기자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윤석열 정부 1년, 모든 것이 실종됐다’를 주제로 윤석열 정부 1년 분석 및 평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법률에 의해 나라를 다스림.’ 법치의 사전적 정의다. 헌법학자들은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통제함으로써 권력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사 법치주의’로 압축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노동개혁의 기초는 현장의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라고 말했다. ‘법률’에 따라 노사관계를 바라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현 정부는 노사 법치주의를 잘못 해석·적용해 정부가 모든 노사관계를 형법과 행정제재 등 법률로 접근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형해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대화가 실종한 채 추진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거센 반발을 불렀다. 그 결과 1년이 지난 현재 노동정책은 실종되다 시피하다. 노조탄압에 항거한 건설노동자의 죽음과, 노동계의 ‘정권 퇴진 투쟁’에 직면하게 됐다.

화물연대 파업 강경대응에 ‘지지율’ 상승, 이후 급선회

10일 취임 1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정책은 노동계의 거센 저항에 맞닥뜨려 있다. 헌법이 정한 노동 3권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의 노동정책 행보가 처음부터 강경 노선은 아니었다. 당선자 시절 한국노총을 방문하며 노동현장 의견을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파업 때도 “엄정대처” 방침을 밝혔지만, 실제 경력 투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의 1차 파업 때 대화를 시도한 끝에 노정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화물노동자들의 ‘2차 파업’이 시작되자 대 노조 정책은 급선회했다. 정부는 “명분 없는 이기적 행동”이라며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두 차례 발동했다. ‘선 복귀 후 논의’ 방침을 세우며 화물연대를 압박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2.5포인트 올라 40%대에 근접했다.

지지율이 오르자 ‘노조 때리기’를 본격화했다.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지칭하며 노조활동에 강요·협박·공갈 등 형법상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2월21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례비’를 정조준했다. 하지만 광주고법은 지난 2월 월례비 지급은 수십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임금 성격이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며 기계 운행을 중단한 행위를 부당하다고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회적 대화 없이 노동의제 일방 추진

노동계를 향한 ‘초강경’ 노선은 이어졌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노동개혁의 배경으로 삼았다. 대기업·정규직 노조에 ‘귀족노조’ 프레임을 씌웠다.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이다. 노동부는 올해 2월 조합원 1천명 이상인 노조 334곳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4월10일 직접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한 노조에 대한 법적 조치 강구를 지시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회계서류 비치와 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노조 42곳은 현장 조사까지 시도했다.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실종됐다. 주요 노동정책 추진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노동개혁 밑그림을 제시할 전문가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출범했다. 연구회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권고했다.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이 가능한 개편안은 거센 반발을 불렀고, 사실상 표류한 상태다.

‘노조 때리기’ ‘노조 불법몰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노동정책은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양회동(50)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하루 뒤 숨졌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에 나서 노정 갈등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 “노사관계 호도, 노동법 무력화”

지금의 노동정책 기조가 이어질 경우 국민적 반발에 부닥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실제 직장인들도 정부 정책에 비판적 견해가 우세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윤석열 정부 1년 분석 및 평가 토론회’에서 “노골적인 반노동·친자본 정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가 노사 간 ‘갑을’ 관계를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정부는 건설업체 사용자들이 스스로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는데도 건설노조에 대한 강압적 수사를 하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절박한 의사표시도 ‘갑질’인 것처럼 힐난했다”며 “정부의 태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하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화물연대 파업 당시 업무개시명령도 화물노동자를 ‘사업자’로 취급해 노동자들 단결을 해체하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시도의 기저에 ‘노동법 무력화’에 있다고 봤다. 이종훈 변호사는 “노동법은 시민법에서 내세우는 당사자 간의 ‘의사’만으로 배제할 수 없는 근로조건의 하한을 설정하거나 교섭과 협상의 ‘자유’를 제한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용인하고 사용자에게 협상에 응할 의무를 부담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그런데 정부는 노동법 존재 의의 자체를 무너뜨리고 모든 노사관계를 시민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심보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변 노동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도 “윤석열 정부 들어 노사법치주의의 탈을 쓴 노동탄압만 난무할 뿐 노동정책은 실종됐다”며 “노동 문제를 정치적 행위의 수단으로만 삼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앞으로도 구체적인 노동정책 내용과 실행 계획이 제시될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자료사진 공동취재사진

“노동정책은 없고 노조혐오로 점철”

전문가들도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기업 편향적인 ‘역주행’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매일노동뉴스>에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노조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공세를 하지만, 노동자들이 왜 아우성을 치는지와 관해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국민 일부의 반노조 정서를 이용해 노동계 저항을 무력화한 시도로 점철된 1년”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 등과 관련한 의제 논의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지난 1년 정부의 노동정책은 없었다고 평가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정책이라고 할 것도 없이 노조혐오와 노동자 편 가르기로 일관한 1년이었다”며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없는 정부라 현 기조 변화가 없이 지지율 상승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반노동정책이며 재계의 청부 입법에 불과하다”며 “노동개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조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조에 대한 전방위적인 탄압에 매달리고 있다”고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