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급체계 말고 무체계부터

2023-04-25     장진희
▲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임금체계는 국가별 맥락에 따라 만들어졌다. ‘호봉제’ 내지는 ‘연공급제’라 칭해지는 임금체계는 1960년대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던 ‘고성장 저임금’의 경제적 호황기로, 자본가들은 눈앞의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하면서며 숙련노동자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했다. 그 결과, 미숙련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입사시켜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을 점차 올려주는, 평생 고용을 전제로 성립된 연공급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잡게 됐다. 특히 연공급제는 고용안정과 더불어 생애주기 흐름에 따라 더 큰 비용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의 욕구에도 상당 부분 부합되는 것으로 평가됨에 따라 노동자 친화적 임금체계로 분류된다. 이에 상당수 기업이 연공급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1970~1980년대 직무급으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노동조합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연공급제로 회귀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다시 직무급제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에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쳐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연공급제 개편이 추진됐다. 그 배경에는 단순히 연공서열대로 임금이 오르는 구조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하고 신규채용을 어렵게 만들어 청년실업이 증가하며, 소득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이유가 존재한다. 문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한 과거 임금체계 개편과 달리 현 윤석열 정부에서의 임금체계 개편은 민간부문까지 확대한다. 거기에 ‘노조탄압’이 더해져 더욱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권고문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로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회는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는 소수의 대기업, 금융, 공공부문 유노조 노동자들만 혜택을 보는 사회악(惡)으로 규정했다. 즉 윤석열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은 그간 나온 신규채용의 억제, 중고령자의 고용불안정, 남녀간의 임금격차, 세대 간의 임금격차 등의 논리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유노조 사업장’ ‘귀족노조’라는 키워드가 추가됐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를 통해 “직무 중심, 성과급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차별화돼야 한다”고 밝히며 연공급제가 도입된 기관의 노동자를 양극화 등 사회문제의 시발점으로 분류하고 철저히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음이 드러난다. 즉 직무급제의 도입이 다수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 우리 현실에 더욱 적합한 임금체계임을 주장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수많은 언론은 ‘호봉제 도입 70%’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여기에는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는 호봉제가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노동시장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개혁해야 한다는 의도가 녹아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연공급제가 절대적 임금체계일까. 우선 임금체계 구조를 다루기에 앞서 통계 문제부터 보자. 우리나라의 국가승인통계 중 임금체계에 관한 조사는 통계청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임금체계는 부가조사에 포함되고 있는데,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와 마이크로데이터(MDIS) 모두 사업체노동력조사 원자료는 공개하고 있으나, 임금체계가 담긴 부가조사는 어느 곳에서도 제공되지 않는다. 자료를 담당하는 통계진흥원에 문의한 결과, 비공개 처리를 요청받았다고 하는데, 즉 연공급제와 직무급제에의 면밀한 실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전무하다는 의미다. 무엇이 더 노동자에게 나은 임금체계인지 검증할 수 없고, 근거조차 찾기 힘들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연공급제가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노동시장 내 절대적 임금체계인가 하는 점이다. 그나마 임금직무시스템에서 연공급제와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의 도입 비율만 간단하게 제시한다. 2022년 6월 기준 우리나라 연공급제 도입비중은 13.7%에 그친다. 10.8%인 직무급제 도입 비중을 고려하면 사실 연공급제가 우리나라의 절대적 임금체계라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서 임금체계에 대한 응답은 복수응답도 가능하다. 연공급제 13.7%는 직무급제가 혼재된, 윤석열 정부의 주장처럼 순수 전근대적 연공급제 비중으로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연공급 70%와 같은 키워드는 어디서 기인했는가. 이는 1천명 이상 사업장 연공급제 도입 비중 67.9%를 마치 우리나라 전체 노동시장인 듯 왜곡한 기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업체를 전수조사하는 전국사업체조사에 의하면 노동시장 내 1천명 이상 사업장은 1.4%에 그친다. 즉 산술적으로 기업 1.4% 중 67.9%만이 연공급제가 도입되고 있는 사실을 마치 전체로 확대해석한다. 특히 임금체계가 없는, 무체계의 비중이 61.1%에 달하는데, 진정 노동자를 위한 임금체계의 개편이라면 연공급제의 직무급제 전환이 아니라 무체계 사업장을 지원하는 게 우선 아닌가.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