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시대, 경쟁 피할 수 없다면 규칙 만들자

노노모 '노동조합을 위한 복수노조 제도 해설' 펴내

2011-08-23     김미영 기자
지난 2002년 28명의 공인노무사들은 ‘가진 자의 이익을 지키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로서 살아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모임을 결성했다. 그렇게 지난 7년간 부당한 법·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노동자와 함께해 온 ‘길 위의 노무사’들이 최근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이 쓰고 <매일노동뉴스>가 펴낸 '노동조합을 위한 복수노조 제도 해설'(315쪽·1만5천원)<사진>이 그것이다.

복수노조 쟁점이 한 권의 책 속으로

이 책은 복수노조 제도의 법적 쟁점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무상의 주요 쟁점과 대응방안을 폭넓게 담고 있다. 저자들은 “제1장에 압축해 놓은 법적 쟁점만 봐도 노조 활동가들이 현행법의 핵심적인 문제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노조 설립부터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부당노동행위에 이르기까지 복수노조 제도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조 운영상의 모든 문제와 해법도 수록돼 있다. 쟁점을 다루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예컨대 저자들은 “모든 노조가 스스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차선으로 연대에 의한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위임·연합의 과반수 교섭대표노조, 단체교섭 및 체결권한의 위임을 통해 사실상 자율교섭에 준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다수의 정규직노조와 소수의 비정규직노조가 공존할 때 과반수인 정규직노조가 교섭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보호에 관한 사항은 비정규직노조에 위임하는 형태로 사실상의 자율교섭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조합원의 가입원서를 만들 때 노조의 취지와 규약에 찬성한다거나 노조의 결의 및 지시사항을 준수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게 좋다는 훈수도 둔다.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톡톡 튄다. 이를테면 과반수 교섭대표노조가 단체협약 요구안을 정할 때 다른 노조의 요구안까지 반영하기 위해 ‘개방형 선호투표제도(소속 노조나 개인 신상 정보를 최소화하면서 교섭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는 방식)’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노조는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

노노모가 이 책을 내놓은 목적은 사실 ‘참고자료’ 편에 나온다. ‘교섭단위 내 노조 간 공동합의서’라는 이름으로 담긴 일종의 복수노조 사이의 신사협정 예시문이다. 복수노조는 필연적으로 노조 간 갈등을 유발한다. 현행 노조법은 노조 사이의 경쟁력을 조합원수로만 판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 간 ‘조합원 빼내기 경쟁’은 불 보듯 뻔하다. 저자들은 “노조 간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기 전에 노조들이 견지해야 할 대원칙, 연대와 단결의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합원 늘리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비열한 조직화 방식을 제지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5장은 이런 목적으로 쓰여졌다. 우리나라에 앞서 복수노조를 시행한 미국·영국·일본에서 조직 간 침탈행위(조합원 빼내기)를 막고 내부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는지 살피고, 한국의 노사관계 지형에 적합한 규율은 무엇이 있는지 참 꼼꼼히도 적었다.

총연맹 간 불가침협정을 체결한다든지, 상급단체별 갈등조정시스템을 마련하고 미국 AFL-CIO가 도입하고 있는 공정중재인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교섭·쟁의행위시 공통의 비용부담 방안부터 이면합의 공개에 관한 사항까지 사업장 복수노조 사이에 발생하는 쟁점을 뽑아, ‘교섭단위 노조 간 기본협정’으로 정리한 부분만 봐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아쉬운 점은 노조를 위해 쓰여진 실무서임에도 불구하고 노조법과 노사관계 이론·실무에 모두 밝지 않으면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올해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은 부쩍 바빠졌다. 법 해석에 대한 논란도 있거니와 실무적으로도 노조에 생기는 변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노모는 노조설립부터 쟁의행위·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정리하고, 복수노조 시대에 노조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야 했다.
올해 초부터 일부 회원들의 제기로 '노동조합을 위한 복수노조 제도 해설'이 기획됐다. 집필은 최근 두 달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김철희(법률사무소 참터)·구동훈(노무법인 현장)·김혜선(여는합동법률사무소)·장영석(전국대학노조 상근 노무사)·배현의(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회원이 저자로 참여했다. 이어 6월에 열린 노노모 워크숍에서 전체 회원 간 토론을 거쳐 원고가 완성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앞서 펴낸 '복수노조 100문100답'과 함께 보면 더욱 좋다. 김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