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가 시행된 지 13년이 흘렀다. 산업재해 관리·감독에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96년 12월 도입됐다. 80년대 4%를 넘나들었던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이 99년부터 0.7%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10여년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선진국 수준인 산재율 0.45% 진입은 말만큼 쉽지 않았다. 2006년 정부는 2012년까지 산재율을 0.58%로 낮추고 2020년에는 0.37%까지 떨어뜨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로서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왜 그럴까.

수년째 정체된 산재율

정부는 91년부터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3개년·5개년·6개년 계획을 세우고 관리·감독에 주력했다. 사회발전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고질적이고 악성인, 겉으로 훤히 드러나는 산업재해 위험요소들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산재는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사망사고가 많다. 산재율도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사망재해자수는 2000년 2천258명에서 2003년 2천923명으로 치솟았다가 2008년 2천422명으로 감소했다. 평균치로 보면 사망재해자수는 10년째 2천500여명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7년 발간한 건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안전사고 사망률은 12.4%로 일본(7.1%)·캐나다(6.2%)·영국(3.5%)에 비해 두세 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10만명당 21명으로, OECD 21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수팀을 비롯한 전문가그룹은 우리나라 산재율이 공식 통계치보다 두세 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산재사고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수년째 정체된 산재율. 전문가들은 “산재를 줄이는 해법은 현장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로는 산재율을 더 이상 줄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업장마다 내재된 위험요소를 줄여야 10년째 제자리걸음인 산재율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성호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같은 업종이라도 사업장 규모나 작업 구조·환경 등에 따라 위험요소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직접 산업안전 관리·감독 주체로 설 때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험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 걸맞은 제도가 바로 명예산안감독관 제도다.

하지만 수년간 산재율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명예산안감독관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예산안감독관 제도가 안착되고 활동이 활발한 몇몇 사업장에서는 산재예방 효과가 뚜렷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명예산안감독관은 3천699명에 불과했다. 2000년 4천565명에서 2006년 3천814명으로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국내 사업장수가 156만개가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명예산안감독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명예산안감독관의 절대적인 수도 부족하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신 회사측 총무나 인사 담당자의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 활동을 하지 않는 곳도 상당수다. 임 국장은 “이런 관행이 있다는 것은 노사정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명예’라는 명칭만 떼도

명예산안감독관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명예’직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45조의2)에는 근로자 대표가 사업주의 의견을 들어 명예산안감독관을 추천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이 위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위촉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권고조항이다. 제도 시행 13년이 지났는데도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배경이다.

산안법 시행령은 명예산안감독관의 업무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 산안감독관이 하는 사업장 감독이나 산업재해 관련 설명회 참여, 산재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에 작업 중지 요청이나 직업성 질환 증상 의심이 있으면 임시건강진단 실시 요청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모든 업무가 '참여나 요청'에 머물러 있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명예산안감독관들은 “명칭에서 ‘명예’ 자만 떼도 산재예방 활동에 충실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산재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은 308명에 불과하다. 감독관 1인당 담당사업장수는 한국이 5천179곳으로, 일본 1천525곳·독일 1천594곳·영국 472곳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명예산안감독관 제도임에도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충북 충주 산업안전연수원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명예산안감독관들은 “이 상태로는 현장의 산업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활동시간과 권한 문제를 공통으로 지적했다. 명예직이다 보니 산업안전을 위한 별도의 활동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단말기 생산업체인 (주)팬택에서 명예산안감독관으로 활동 중인 정천옥씨는 "산업안전 감독은커녕 교육에 오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때가 많다"며 "아무리 열의가 있다고 해도 업무 외 시간에 산업안전 활동을 하라고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심지어 사업장 내 산업안전 감독이나 외부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귀띔했다.

명예산안감독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사업장 내 위험·위해요소를 발견하더라도 시정을 요구할 수 있을 뿐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이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주)오리엔탈정공의 송종안 명예산안감독관은 “회사측에 시정을 요구해도 사측 관계자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경우가 많다”며 “법에 규정된 ‘할 수 있다’ 이런 문구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법·제도 개선을 포함한 정부의 지원 부족을 지적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윤조덕 박사(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2006년 제조·건설·운수업 사업장 내 명예산안감독관 7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활동에 가장 큰 애로점으로 ‘정부(노동부)의 소극적 제도 운영과 지원 부족’을 꼽은 사람이 40.5%(301명)에 달해 1위를 차지했다.

윤조덕 박사는 이에 대해 “명예산안감독관은 자율적인 사업장 내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위해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한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극히 제한적인 보조활동에만 머무르고 있다”며 “이들의 활동시간과 신분보장, 권한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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