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한 사업장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린 사업장 13곳 중 이를 이행하지 않은 2곳을 부당노동행위로 사법처리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원만하게 합의한 것을 두고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노사 자율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노동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반면에 노동부는 “현행 노조법을 위반했는데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타임오프 고시 한도를 초과한 노사합의에 대한 노동부의 사법처리. 정당한 법 집행일까, 과도한 개입일까



“금속노조 겨냥한 노동부의 사법처리 방침”
이재인 금속노조 단체교섭실장



 


노동부가 밝힌 사법처리 대상 사업장은 대부분 금속노조 포항·경주지부 소속이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노동부 포항지청은 유일교섭단체조항·조합원 자격과 가입·단협유효기간·전임자 임금 지급 등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 지부가 시정을 거부하자 포항지청은 노동부 지청 중 처음으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명령을 위한 의결을 요구했고, 지노위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포항지청이 문제라고 지적한 내용들은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노조가 한 발 양보하더라도, 전임자임금 지급 문제 정도가 논란의 소지가 있을 뿐이지 나머지 조항은 문제될 게 없다. 경주·포항지부는 노동부의 사법처리 방침에 대응해 행정소송을 내기로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최근 노동부는 노조법과 관련한 한국노총의 질의에 대해 “전임자 문제를 제외한 노조활동에 대한 노사합의는 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은 사법처리를 하겠다고 하고, 한국노총의 질의에는 상이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가 금속노조를 표적으로 삼아 단속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노조 약화 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인상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위원장



 


타임오프 제도의 법 취지는 한도 내에서 전임자수와 처우에 대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부 유관기관들이 앞장서 법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다. 노동부 고시대로라면 조합원수가 1천여명인 지부는 5명의 풀타임 전임자를 둘 수 있다. 그런데 사측은 3명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 파행을 빚고 있다. 노조가 ‘법대로 하자’고 해도, 사측은 정부 지침 등을 핑계로 대면서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7차 본교섭에서 전 노동부차관인 노민기 공단 이사장은 "타임오프 취지는 전임자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오프 제도를 이용해 노조를 약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노동부 장·차관은 앞에서 노사 자율을 말하고 있지만, 뒤로는 유관기관 교섭에 개입해 법적 기준에도 못 미치는 타임오프 한도를 종용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법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과연 정당한 법 집행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용자들이 원칙 지켜야”
이동응 한국경총 전무



 


노동부가 타임오프 한도를 조금만 초과해도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사법처리하고 있다. 한도 초과 범위가 아주 적어도 법은 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한도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최근 노동부가 사법처리 의사를 밝힌 사업장은 100명 이하 사업장이다. 그런 사업장에 타임오프 한도 1천시간과 0.5명의 근로시간면제자도 많은 것이다. 100명 이하의 조합원이 있는데 함께 일하면서 노조 일을 해야지, 노조 일만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회원사들도 타임오프 한도 위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총은 이미 올해 2월과 타임오프 한도가 고시된 5월에 법과 원칙을 지키자고 결의했다. 기왕에 시작된 제도는 잘 정착돼야 한다. 노조는 물론이고, 특히 사용자들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노사관계가 불안해질 수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다.


“한도 초과하면 법위반, 시정명령·처벌 불가피”
이재갑 고용노동부 노사정책실장



 


정부가 고시한 타임오프 한도를 넘기면 법 위반이다. 설사 사용자가 노조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치더라도 노조법 위반 혐의는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시정명령을 하고 시간을 줬는데도 불응했다면 어쩔 수 없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사가 타임오프 한도 초과에 대해 합의한 뒤에도, 정부가 법 위반 사항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는 사용자들도 있다. 한도를 초과한 사업장이라고 해서 모든 사용자가 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사업장마다 노사관계는 다를 수 있다. 원만한 노사관계에 의해 타임오프 한도 초과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정해진 법과 원칙은 적용해야 한다.
일부 사업장에서 위반하는 사례가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 제도가 현장에 잘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 위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시간이 지나면 더욱 많은 사업장에서 합법적인 타임오프 한도를 도입하게 될 것이다.


“현장 안착 위해 정부 역할 필요한 때”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노동부는 법을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것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타임오프 고시 한도를 초과해도 정부에 개입하지 말라는 건 법을 만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사자율 합의 원칙에 대한 논란은 법을 만드는 초기 단기에 끝냈어야 할 내용이다. 노사자율을 이유로 타임오프 고시한도를 초과한다면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모순이 발생한다.
지금은 법을 제정한 만큼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할 때다. 법이 제정된 만큼 법을 정착시키기 위한 다음 단계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노사자율과 공익을 위한 규율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자율만을 내세우며 정부의 법 집행을 거부한다면 법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기아자동차 사례에서 보듯이 타임오프 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며 운영되고 있다고 본다. 기아차가 무급 전임자수를 유지하는 건 절반의 아쉬움이지만 기아차도 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점에 대해서는 의미 있게 평가한다. 어떤 제도든 연착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정비용과 시행기간이 필요한데, 법을 인정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논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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