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예방에 소홀한 사업장 명단을 공개했다. 이날 공표된 사업장 가운데 산재 다발 사업장은 지난해 같은 업종 규모별 평균재해율 이상인 사업장 중 재해율이 상위 10% 이내인 사업장 295곳이다. 상위 10% 이내에 포함돼도 재해자가 2명 이하인 사업장은 제외됐다. 그간 재해율 상위 5% 이내인 사업장 명단을 공개했다면 올해는 상위 10%로 공개 대상 사업장이 늘어난 것이 예년과 달라진 점이다.

놀라운 점은 295곳 가운데 35.9%(106곳)가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힘써야 할 지자체가 되레 산재 예방에 소홀한 사업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았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을 비교해본 결과 전체 사업장에서 지자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도 지난해였다. 2006년 산재다발 사업장 총 151곳 가운데 지자체는 19곳(12.6%)에 불과했다.

산재 다발 지자체 급격히 늘어

최근 몇 년간 산재다발 사업장 가운데 지자체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업종은 위생 및 유사 서비스업이다. 이 업종에서 지자체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해당 지자체가 환경미화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위생 및 유사 서비스업과 함께 임업에서 지자체의 명단이 많았다. 임업의 경우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 전체가 지자체였고,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은 70곳 가운데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지자체였다. 2008년에도 임업과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 산재다발 사업장 가운데 지자체의 비중이 높았지만 그 숫자는 적었다. 임업 5곳,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에서 13곳 정도였다. 2006년에서 2009년 사이 산재다발 사업장 수를 보면 임업과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의 사업장 수가 빠르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참조>

노동부 관계자는 “우선 공개 대상 사업장 범위를 재해율 상위 10%로 확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산재다발 사업장은 100인 이상 사업장만 공개를 하는데 두 업종에 100인 이상 사업장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희망근로 등 공공근로사업에서 재해가 많이 발생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전체 임업에서 공공근로가 얼마나 차지하는 지는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희망근로사업’ 지자체 재해율 높여

노동부의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희망근로사업 때문에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에 오른 지자체가 눈에 많이 띈다. 지자체 이름 아래는 희망근로사업이라는 표시가 돼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희망근로사업이라고 명확하게 표시된 것만 추리면 29곳이나 된다.

구체적인 사업내용은 동네마당 조성사업, 공공시설물 환경정비 사업, 공원 산책로 정비사업, 소규모 주차장 조성사업, 꽃심기 사업, 산림가꾸기 사업, 도시경관 가꾸기 사업, 무학산 소나무 고사목 제거, 생태하천 만들기, 골목길 환경정비 등으로 다양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희망근로사업에서 1천834명(2009년 11월말 기준)이 산업재해를 당해 재해율이 1.48%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율의 0.71%보다 2배 높은 것이다.

7개 지자체는 희망근로사업을 벌이다 건설업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부산시 금정구청의 경우 희망근로사업이라고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그 성격이 유사해보이는 ‘실버로드조성사업’으로 130명의 노동자 가운데 무려 24명이 재해를 당해 18.46%의 높은 재해율을 나타냈다. 이 밖에도 인천시 부평구청은 산지정화 및 산림 가꾸기라는 희망근로사업을 진행하다 6명의 재해자가 발생해 6%의 재해율을 보였다. 인천시 연수구청은 환경정화사업으로 5.83%, 부산시 사상구청은 도시경관림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다 5.5%의 재해율을 보였다.

산림가꾸기 등 공공근로사업도 복병

희망근로사업만 문제는 아니었다. 유사한 성격의 공공근로사업도 높은 재해율을 나타냈다. 공공산림가꾸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화순군청은 지난해 공공산림가꾸기 사업을 하다 14명의 재해자가 발생해 재해율 13.73%를 기록했다. 동종업종 규모별 평균 재해율인 3.26%보다 무려 10%포인트 이상 높은 재해율이다. 순천시청도 지난해 공공산림가꾸기 사업으로 13명의 재해자가 발생해 재해율이 10.68%에 달했다. 이 밖에도 고흥군·목포시청·보성군·대구시·산청군청·부여군·제천시청·논산시·대구 동구청 등이 산림 관련 공공사업을 벌이다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지자체가 스스로 재해를 예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지자체로 이양하도록 결정한 대통령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결정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지방분권촉진위는 지난 2월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업무 가운데 7개 기능 25개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재 추가적으로 안전보건과 관련된 업무 지방이양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보건’ 인식조차 부족한 지자체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지자체가 재해예방을 위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지자체가 그 지역의 노동자 산재예방을 위한 정책을 위임받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희망근로사업에서 재해율이 높아지자 올해 3월부터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회 이상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희망근로에 참여하는 노동자 가운데 산재 취약계층인 고령자가 많아 단순히 1회성 교육만으로는 산재를 예방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가 담당하는 청소 업무와 공공근로사업 등에서 매년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도 시급한 상황이다. 선거로 선출되는 지자체장 가운데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는 인사는 드물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지자체가 담당하는 각종 사업에서 산업재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기홍 국장은 “지자체 역시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안전보건 교육을 하고 있다”며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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