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무개(30) 강남건설 안전대리는 휴가를 하루 앞 둔 지난달 27일 외벽거푸집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외벽거푸집은 부산 해운대 공사장 건물의 지상 190미터 높이에 설치됐다. 시공사는 현대산업개발이고, 강남건설은 협력업체다. 거푸집 해체작업은 반드시 안전관리자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거푸집 설치와 해체를 전문으로하는 일명 '페리팀'이 작업을 해야 한다.

현장 동료 증언에 따르면 그날 '페리팀'은 임금체불을 이유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손 대리는 사고 당일 작업을 거부했다. 손 대리가 '울자 겨자먹기식'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강남건설의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은 당일에 해체작업을 모두 마무리하라고 요구한 때문이다.

결국 그날 손 대리는 190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작업발판과 크레인 간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 손 대리가 추락하면서 함께 일하던 강남건설사 소속의 이아무개(35) 안전과장과 박아무개(54) 건축반장도 사망했다.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본부(본부장 김근주)는 "불법 작업을 강조해 발생한 필연적인 사고"라며 "현대산업개발과 강남건설의 현장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본부와 유가족들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과 강남건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사고가 난 지 5일이 지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유족, 강남건설의 ‘사실확인서’ 공개 … "필연적 사고"

"미스터리다. 해당 작업의 안전을 감독해야 할 사람들이 왜 거푸집 해체작업에 투입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동부지청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노조 부울본부 또한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외벽거푸집 해제는 위험한 작업으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하는데 그 작업을 감독하는 안전관리자가 사망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산동부지청과 해운대 경찰서는 숨진 세 사람이 현장에 투입돼 일하게 된 경위와 안전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작업발판을 고정시키는 안전핀이 풀려 있는 점 등도 수사 대상이다.

유가족들이 강남건설 현장소장인 ㅎ씨로부터 제출받아 1일 공개한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그날 사고는 ‘예견된 인재’였다.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강남건설에게 페리팀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는데, 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강남건설이 (페리팀에게)돈을 주지 않아 인원을 투입하지 않기로 했다"며 "현대산업개발이 당일 철거를 강요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시켰다"고 적시됐다. 확인서에는 또 "지난번에도 손 대리·이 과장·형틀반장과 전문가 1명이 해체작업을 한적이 있다"고 명시돼 손 대리 등의 불법작업이 반복된 사실도 확인됐다.

본부조사에 따르면 고인이 된 박아무개(54) 건축반장도 해체작업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는 도면을 판독해 건물의 평면도를 바닥에 그리는 작업을 하는 이른바 '먹반장'이었다.

“강남건설은 불법 강요·현대산업개발은 직무유기”

강남건설은 결국 자격없는 사람들을 동원해 작업을 강행하면서 3명의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셈이다.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도 강남건설이 제출한 작업계획서에 따라 지정작업자(페리팀)가 일치하는지 등을 감독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

부울본부는 "공사 현장을 조사해보니 당일 해체하려던 4개의 외벽거푸집을 제거해야 다른 건물의 외부유리작업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현대산업개발이 공기를 맞추려다 고인들을 위험한 작업으로 내몰았다”고 밝혔다. 유족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이렇게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원청의 명령이 얼마나 무섭기에 본인의 업무도 아닌 다른 일을 하다 목숨까지 잃어야 했는지 답답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작업발판의 안전핀이 풀려져 있던 것도 현장의 안전관리가 허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2008년 갱폼 인양 전 볼트를 미리 해체하지 말도록 안전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는 관행적으로 공기단축을 위해 미리 볼트를 해체하는 곳이 적지 않다.

생사람 잡은 유보임금

공기단축 관행과 함께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건설업계 내 악습인 유보임금이 자리잡고 있다. 강한수 본부 조직국장은 “고인들이 지난번 작업에 투입됐을때도 강남건설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페리팀' 중 일부가 출근하지 않았던 날”이라며 “평소에도 강남건설은 인건비를 아끼려고 임금 등을 편법으로 삭감해 노동자들과 법정시비가 진행중인 곳으로 돈 몇푼 아끼려다 애꿎은 목숨만 잃었다”고 비판했다.

현재 부산동부지청은 사고가 발생한 건물의 공사를 중단시켰으며, 다음주께 조사 결과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부산동부지청 관계자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 조사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구조적 결함보다 작업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 이를 감독하는 해당 관리자와 사업주들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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