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통계가 처음 공개됐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박응용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 무소속 후보가 집단 직업병 발병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근로복지공단의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요양신청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연구소를 통틀어 매년 산재로 인정된 노동자는 2005년 25명·2006년 30명·2007년 20명·2008년 69명·지난해 88명이었다. 5년 동안 279명이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고, 이 중 232명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공단 자료에는 요양신청 건수와 승인건수만 나와 있어 어떤 유형의 사고나 질병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노동부 대정지방노동청이 2007년 12월 작성한 한국타이어 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유기용제로 인한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4명, 작업관련성 뇌심혈계질환으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6명에 불과했다.

 


직업병 승인 여전히 어려워

작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업무상사고와는 달리 업무상질병은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 81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98년 퇴사한 안아무개(67)씨는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당했고, 최근 재심청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안씨는 입사 후 줄곧 정련공정에서 일했다. 정련공정은 타이어생산에 필요한 원·부재료가 모두 투입되는 공정이다. 정련공정에서는 포대·관으로 입고되는 재료를 각 타이어제품 구성비에 따라 정확히 무게를 재어 혼합하는데, 포대를 찢어 재료를 붓거나 원료의 무게를 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화학물질 분진에 노출된다. 안씨는 입사한 지 10여년이 지난 90년대 초부터 기침이 나고 가래가 생기는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난청이 생겨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이 너무 컸던 것이다. 안씨는 “카본블랙과 이름도 알 수 없는 화학물질 수십 가지를 사용했다”며 “일하고 나면 얼굴과 몸이 모두 시커멓게 변해 정련공정 노동자들은 샤워도 따로 하고 식당도 따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카본블랙은 타이어공장에서 보강제와 충진제로 사용하는 미세한 입자상 물질로 다핵방향족탄화수소를 함유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Group 2B로 지정한 발암물질이다. 2007년 역학조사 당시 한국타이어는 66종의 화학물질과 120여종의 화학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씨는 그러나 20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역학조사를 벌이기 전에는 일주일 전부터 공장을 청소하기에 바쁘다”며 “제대로 된 작업환경이 반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기침이 10년 넘도록 끊이지 않자 98년 가족들의 권유에 따라 퇴사를 결정했다.

고엽제 환자는 20년 지나도 치료받는데…

안씨는 대전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잔업으로 지하탱크에서 누수된 카본블랙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카본블랙 자체가 잘 쓸어지지 않아 톱밥에 경유를 묻혀 카본블랙을 제거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단은 회사측 주장을 받아들여 산재 심사 과정에서 잔업을 한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산재승인을 못 받는다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안씨는 지금도 잦은 기침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협심증·고혈압·당뇨병·말초신경병증 등 대여섯 가지 병을 달고 산다.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요양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공동된 특징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질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 확인된 93명의 사망자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수진내력이 확인된 21명의 질병내역을 보면 공통적으로 한 사람이 여러 질병으로 진료를 받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급성 기관지염이나 호흡기질환·두드러기 같은 피부질환을 앓은 사람이 특히 많았다.

노동자 절반 질병 노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질병은 퇴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9년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441명의 노동자가 직업성질병으로 진전될 우려가 있어 추적검사같은 관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90명은 일반질병으로 진전될 우려가 있어 관찰이 필요한 노동자로 분류됐고 23명은 직업성질병, 138명은 일반질병 소견이 있는 자로 나타났다. 또한 노동부에 의해 사후관리되고 있는 노동자가 전체의 73%(3천282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참조>
 
 


이런 가운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안전보건기능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가 안전보건기능 지방이양을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강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난 2월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지방으로 이양하기로 확정한 사무에는 사업주 감독기능과 역학조사 사무가 포함돼 있다. 유기용제 대책위 관계자는 “한국타이어 사례에서 보여 주는 산업재해의 충격은 기업이나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시스템이 2000년대 산업재해의 성격을 흡수하지 못했기 나타난 결과”라며 “안전보건기능이 지방으로 이양될 경우 정부의 안전보건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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