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5일 중국의 쑤저우에 소재한 윈테크 공장에서 노동자 7천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윈테크는 평면 모니터 화면을 만들어 애플사에 제공하는 회사다. 이 공장에서는 노말헥산으로 유리 세척작업을 하는데, 통풍이 좋지 않은 데다 필수보호장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노동자는 노말헥산에 중독됐지만 회사측은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생산량을 회복했는데도 불구하고 연말 보너스 지급까지 취소했고, 이것이 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노동감시’(Labor Watch)의 샬롯 우씨>

반도체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기간인 4일, 아시아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금속노조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암 발병시키고 대만 떠난 RCA

대만 RCA 노동자협의회에서 활동하는 치아 캉 우씨는 미국 무선 전기회사인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n)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 발병 후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 과정을 소개했다. RCA는 1960년대에 미국 인디애나 공장에서 심각한 환경오염과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해외로 공장을 옮겼는데 그 첫 번째 국가가 대만이었다. 당시 대만 정부는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92년 RCA가 대만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최대 2만~3만명의 노동자가 고용됐다.

그러던 중 94년 대만의 한 입법위원(국회의원)이 RCA 타오위엔 공장의 토양과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오염원은 기계를 소독하는 데 쓰이는 세정제인 트리클로로에틸렌과 사염화에틸렌이었다. 이후 대만 정부는 RCA에 오염을 정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98년 지하수 정화 실패를 공식화하고 첫 영구오염구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98년 당시 공장은 이미 철수했지만 퇴직한 직원들 사이에서 잇따라 암이 발병하기 시작했다. 간암·폐암·대장암 등 암의 종류도 다양했다. 치아 캉 우씨는 “87년 이후 암으로 죽은 노동자가 20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며 “암을 앓고 있는 사람만 해도 3천명이 넘었다”고 전했다. RCA 노동자들은 이후 정부에 직업적 암 발생 사건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현재도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긴 시간 투쟁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자궁암과 유방암에 대해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 냈다”며 “공장은 폐쇄됐지만 매년 산재 회원들이 모여 총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장시간·저임금에 시달리는 아시아 노동자들

노동감시(Labor Watch)에서 활동하는 샬롯 우씨는 중국과 대만의 전자산업 노동조건을 소개했다. 샬롯 우씨는 “중국에 진출한 폭스콘(Foxconn)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매일 12시간, 잔업이 있을 경우 14~15시간을 일한다”며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폭력을 당해 사망한 사례도 있었지만 정부나 경찰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중국의 전자산업 노동자들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했을 때 노조가 없고 건강보건 문제에 관심이 적으며 임금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포 레옹 아시아노동감시센터(AMRC) 활동가는 “70~8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전자회사들이 홍콩·대만·한국 등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아시아가 IT산업에서 급부상했다”며 “반면 노동자들은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삼성은 직원들의 활동이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하면서도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면 해고한다”며 “국제적인 전자기업들의 단체인 전자업체행동규범(EICC)에 삼성의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윤민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지회장과 김갑수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이 한국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실상을 전했다. 이시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황유미 동지로 인해 삼성의 책임성 인정·독성 물질 사용중단·피해노동자 보상 등 살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많은 과제가 남았다”며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삼성에 노조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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