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전쟁이다. 방어하려는 정부와 공격하는 국회의원이 곳곳에서 부딪힌다. 그래서 국정감사장은 전쟁터다. 방어 진지는 너무 견고해서 누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공격하느냐에 따라 승패에 달라진다. 퇴로를 차단하고 허를 찌르는 전술 또한 중요하다. 탁월한 무기가 없다면 '총탄'이라도 많이 준비해야 한다. 물량공세로 적장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 보좌관은 이렇게 말한다. “7천대 2의 싸움이죠.” 노동부 지방노동청까지 직원을 통틀어 보면 7천명 정도에 달한다. 반면 한 의원실에서 노동 분야를 전담하는 보좌진은 고작 두 명 정도다. 그러나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다. 국회의원과 '책사'(보좌진)의 매끄러운 조화는 의외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 전쟁터로 들어가 보자.



시간과의 전쟁

노동부 산하기관과 2개 지방노동청에 대한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가 열렸던 지난 16일 인천시 부평구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김상희 민주당 의원실 이현서(32) 비서관이 국감장인 5층과 보좌관 휴게실인 6층을 급하게 오르내렸다.

국감장에서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명단 공개를 놓고 김 의원과 김원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사이에 판정위원 명단 공개 논쟁이 한창이었다. 지난해 질병판정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만에 산재승인율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정보공개법에 위배된다고 추궁했고, 김 이사장은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비공개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며 맞섰다.

이현서 비서관은 보좌관 휴게실에 비치된 노트북 컴퓨터에서 산재재해보상보험법과 정보공개법, 행정심판법 조문을 일일이 비교해 공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질의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핵심을 간추려 출력한 문건을 김 의원에게 전달한 뒤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원들 뒤에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어김없이 정책보좌진들이 앉아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의원들의 자문에 답하고 관련자료를 제시한다.
사실 국감에서 의원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종일 많아야 25분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국감장에서 의원들이 “짧게 대답하세요”라든지 “네, 아니오로 대답하세요”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묻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 모두 소화하고 싶은 마음에, 꼭지마다 힘을 다해 파고들었던 보좌관을 배려하는 마음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국회를 우롱하는 겁니까”

이달 23일 국회에서 진행된 노동부 종합감사에서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임태희 노동부장관을 질타했다. 스크린에는 노동부에서 보좌진에게 보낸 ‘노동부 자료제출’이라는 메일이 떴다. 제출을 요구한 보고서를 파기했다는 내용이다. 홍 의원은 “피감기관이 국회를 우롱하고 있다”며 “진상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홍 의원실 김인수(45) 보좌관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국감 하루 전에 자료를 상자째 보내는가 하면, 안 보내 놓고 보냈다고 거짓말까지 한다는 것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사모펀드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입혔다거나, 노사공동재취업센터가 취업교육 참여자를 허위로 올렸다는 문제 모두 이미 지적했지만 관련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자료를 놓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한다.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1사 다수노조 교섭현황’ 자료가 대표적이다. 분석자료도 아니고 다수노조가 있는 회사를 열거한 정도의 자료였는데 노동부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뒤이어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리는 등 해프닝을 벌였다.

강 의원실 오영하(35) 비서관의 말이다. “지난 7일 노동부 국감에 앞서 추석 전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노동부가 없다고 발뺌해요. 그러다 홈페이지에는 추석연휴 기간이었던 3일에 슬그머니 올렸다가 갑작스럽게 내렸어요.”

오 비서관은 이미 가지고 있던 2007년 12월 자료와 올해 새로 생산된 자료에 나온 다수노조 기업을 하나하나 대조했다. 100개가 넘는 사업장이다. 그랬더니 2007년에는 한 사업장으로 묶었던 것으로 올해는 4개로 집계하는 등 실수투성이였다. 노동부는 조사자료를 근거로 다수노조가 계속 늘고 있다며 복수노조 시행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논리 근거가 허술하다는 뜻이니, 노동부로서는 흔쾌히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듯도 하다.


국회 귀신들

국감 기간에는 그야말로 정보가 넘실댄다. 준비하는 일은 물론 보좌진의 역할이다. 밤을 새는 일도 잦을 뿐더러 국감 기간 동안 아예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홍희덕 의원실에는 간이침대가 3개다. 원래 의원실에 지급된 간이침대는 1개인데, 주위 의원실에서 2개를 더 빌렸다. 하나는 송용한 보좌관이 쓰고, 나머지는 돌려 쓴다. 송 보좌관은 추석연휴 이후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20일 가까이 국회에서 지낸 셈이다.

김상희 의원실은 주변 의원실로부터 “노숙자 집단”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국회 밤샘이 잦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감 기간 중에 강성천 의원실에 들어온 채종현 정책비서는 지난 10일간 귀가한 날이 4일에 불과하다. 밤샘작업이 잦다 보니 피감기관의 국회 담당자들도 밤 늦게 의원실을 찾는다. 그들 역시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 노동부 감사 하루 전인 23일 자정께 만난 류성진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내일이 마지막”이라며 심호흡을 했다. 그는 "임태희 장관 인사청문회부터 한 달 반 동안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며 "국감 첫날 질의를 앞두고는 2주 동안 밤샘하다시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보좌관들은 노동부나 환경부 관리들이 저녁에 들고 온 간식을 두고 웃지못할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대개 통닭이나 피자·도넛·커피 등이 메뉴에 오른다. 야당 보좌관이 “몸에 안 좋은 통닭을 먹여 빨리 죽이려는 것 아니냐”는 농을 친다. 듣고 있던 여당 보좌관은 “야당이라 더 주나, 우린 도넛만 갖다 주던데”라며 억울한 척한다. 피감기관이 야당을 더 부담스러워 한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도넛이 더 몸에 안 좋은데.” 한쪽에서 나온 촌철살인 농담에 좌중이 쓰러진다.

힘들어도 버티는 건?

길고 긴 스무날 국정감사를 밤새 가며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그 순간’이다.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것. 22일 밤 11시께 김상희 의원실 이현서 비서관에게 전화가 왔다. 김 의원이 국감 초기에 지적했던 ‘정부지원금 부정수급 브로커’를 노동부가 검찰에 고발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고용지원금 대행을 알선하는 브로커를 고용하고 돈을 받고 양성하는 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자체로도 큰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비서관은 “워낙 전문가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문제제기하는 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며 “취재하고 정보를 취합해 문제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질의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질의 과정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외통수에 걸렸다고 생각이 들 때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분 때문에 샘플 2만개를 하나하나 뒤질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오영하 비서관은 “성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올해와 분명히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 아닙니까. 만나는 사람, 일 모두 팔딱팔딱 뛰는 것을 느낍니다.”


국회 보좌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보좌관들의 일터는 의원회관이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볼 때 왼편에 자리 잡은 지상 8층, 지하 2층 건물이다. 의원실은 의원 집무실과 보좌진이 근무하는 보좌관실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 12평이다. 보좌진실을 거쳐야 의원실에 들어갈 수 있다. 12평에 보좌진 6명이 일하다 보니, 보좌관실은 의원집무실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에 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처럼 집무실 일부를 보좌관에게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 의원회관에는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국회의사당 본관에 사무실이 있는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당 원내대표를 제외하고 270여개의 의원실이 있다.
보좌직원은 의원 보조직원 정원규정에 명시돼 있다. 지난 97년에 개정된 규정에 따라 4급 보좌관은 2명, 5급 비서관은 1명, 6급과 7급·9급 비서는 각 1명씩 둘 수 있다. 인턴은 2명까지 채용할 수 있다. 조만간 보좌진 확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말 5급 비서관 1명을 충원하는 안이 국회운영위를 통과해 본회의 의결만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 때만 바쁘다?=법 개정 논란으로 유난히 국회 파행이 많았던 올해, 그만큼 국회는 원 구성도 못하고 공전되는 날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무노동 무임금’이라며 세비를 반납하라는 요구가 일기도 했다. 이렇게 휴회했을 경우 보좌관들은 놀까. 천만의 말씀.
오영하 비서관에게 물었더니 자료 찾기와 회의 참석, 방문자 응대, 회의자료 만들기, 업무연락 등 일상적인 업무량 자체가 많다고 한다. 오 비서관은 “국정감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원 발의 법안을 작성하고 여론 수렴과 전문가 의견 반영과 같은 법 제·개정 작업은 보좌관 고유의 일이다. 의원이 상임위나 세미나 같은 각종 활동을 통해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 언론기관에 보낼 보도자료 작성, 선거관련 업무와 의원을 수행하는 것도 보좌관이 해야 한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에는 지구당 관리까지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적 없으면 못한다?=지난해 18대 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 중 보좌관 경력자는 22명에 달한다. 한나라당에서 조원진·조해진·차명진 의원 등이, 민주당에서는 백원우·서갑원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적지 않은 보좌관 출신이 국회에 입성한다는 것은 보좌관의 정치색이 뚜렷하기 때문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당적은 보좌진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민주당 의원으로, 민주당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 갈아탄 보좌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흐름은 민주노동당 출신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다. 의원과 다른 정당을 지지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런 현상은 보좌관을 정치적인 도구가 아니라 직업으로 선택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요새 의원실에 지원하는 인턴 중 상당수가 학벌이 좋고 다양한 능력을 가진 청년들”이라며 “보좌관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계희 기자

 
 

보좌진 물갈이는 국정감사가 끝나는 시점에 많이 일어난다. 다른 의원실에 비해 언론 노출빈도가 적거나, 정책을 다루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문책성 인사인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도 이맘때 보좌관이나 비서관 모집공고가 국회 홈페이지에 수십 건씩 올라왔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서 경질되더라도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며 “문제가 생기면 다른 방으로 가는 것조차 어렵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정택 연구원은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자신들의 업무 중 ‘입법활동과 정책활동 보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용불안정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도적으로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이상 개인의 능력개발을 통한 전문성 확보가 현실적이지만 자기계발 기회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보좌진을 위한 재교육과 교육 기회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계희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