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투영된 ‘오토바이’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부정적인 것이다. 폭주족이나 건달, 그도 아니면 겉멋만 잔뜩 든 재벌 2세는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바이크족의 절대 다수가 재래시장 상인이나 배달업 종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실 속 오토바이는 부나 과시욕의 상징이 아닌 생계형 교통수단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경제위기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부르기 마련. 오토바이 주요 소비층인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오토바이 생산업체의 고용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오토바이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중국산 저가 오토바이가 물밀듯 밀려들면서 위기에 직면한 국내 오토바이 산업은 자영업의 위축과 맞물려 수렁에 빠져 들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동 58번지 대림자동차공업(주) 정문 앞. ‘정리해고 박살’, ‘함께 살자’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은 컨테이너박스 한 동이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경수(42)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지회장이 홀로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다.
 
국내 1위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대림자동차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회사측은 생산물량의 절반을 줄이겠다고 지회에 밝힌 상태다. 어림잡아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 700여명 중 절반이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된다. 회사측은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싼 부지를 찾아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가 오토바이 업계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 업계 ‘쌍용차 사태’ 재연되나

같은 시각 오토바이 가공공장 안. 생산량 조절을 위해 나흘간의 휴업을 거쳐 전날 조업이 재개됐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에 이어 세 번째 휴업이다. 공장 안은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생산공정은 자동차 생산공정의 축소판이다. 각각의 파트에서 부품과 차체 등이 만들어지고, 완성차 조립라인에서 한 대의 오토바이가 조립된다. 대림자동차의 경우 오토바이 바퀴 휠과 부품 조립, 가공·용접·주조(일주) 공정의 일부가 외주화된 상태다.

생산팀 가공파트에서 일하는 한병권(43)씨는 하루 종일 콘넥팅로드를 가공한다. 일명 콘로드라고 불리는 이 부품은 오토바이 바퀴를 회전시키기 위한 장치다. 공고를 졸업한 뒤 바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는 한씨는 “잔업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며 과거의 영광을 아쉬워했다. 그는 “한창 잘나가던 때에 비하면 생산량이 20~30% 수준으로 줄어든 것 같다”며 “가족들이 ‘정리해고 대상이 될지 모르니 휴대폰을 잘 보라’고 말하더라”며 씁쓸해했다.

가공공장 옆 도장공장에서는 오토바이 외장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 한창이다. 노동자들은 도축장의 돼지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 실려가는 차체에 스프레이 염료를 뿌린다. 생산팀 표면처리파트에서 일하는 김인덕(48)씨는 자신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까 봐 초조해했다.
 
중량물을 다루다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기도 했다는 김씨는 “이 나이에 산재 경력까지 있는 나를 누가 써 주겠냐”며 “내 손으로 만든 성능 좋은 국산 오토바이는 비싸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아프고 나이 많은 나 같은 노동자는 쓸모가 없어졌다며 버려지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각각의 공정을 거친 부품과 차체는 완성차 조립라인으로 모여든다. 컨베이어벨트를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마주선 노동자들은 각각 자신의 업무에만 열중했다. 누구는 하루 종일 나사만 조이고, 누구는 하루 종일 바퀴만 끼우는 모습 역시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흔한 풍경이다. 조립라인에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자동차 공장과 다른 점이다.

약 1분에 한 대씩 오토바이가 조립된다. 새 오토바이는 성능검사를 받기 위해 출하공장으로 보내진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오토바이가 죽 늘어서 있는 출하공장은 흡사 주차장처럼 보인다. 물류팀 출하파트에서 일하는 김대현(40)씨는 “정부의 무관심과 기술개발 노력을 게을리 한 회사측이 구조조정을 재촉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기간산업을 육성한다며 자동차 산업에 각종 세제혜택을 집중하면서, 정작 저소득 자영업자의 생계수단인 오토바이 이용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측도 중국산 제품을 들여와 대림의 상표만 붙여 판매하는 OEM제품의 비중을 늘려 왔다”며 “이러니 오토바이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점심시간. 오전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구내식당으로 모여드는 동안 지회 간부들은 식당 앞에서 중식집회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지회 간부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종종걸음으로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얘기는 올 초부터 흘러나왔다. 회사측에 따르면 이달 현재 차입금 현황은 930억원에 달한다. 회사는 올해만 120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지난 5월 지회에 사택매각을 요구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생산축소와 아웃소싱 협의를 요청해 왔다. 회사는 현재 10만대 생산체계(1일 10시간 기준)를 5만대로 조정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하루 400대 생산에서 210대 생산으로 물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회사측은 또 가공파트를 17개에서 8개로 통합해 순환생산하고, 도장파트는 28개 공정에서 14개 공정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이 밖에 용접과 도금·주조·출하·부품센터에 이르는 전체 공정 가운데 일부를 아웃소싱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빠르면 이달 말 정리해고 인원을 통보할 계획이다.

회사측은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현동 상무는 “당장 회사가 살아야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시장상황에 맞게 회사 구조를 개편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노 상무는 “노조나 근로자대표들이 회사를 살리고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다면 적극 수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의 구조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에도 174명이 감원됐다. IMF를 기점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한 국내 오토바이 시장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회사의 허리띠 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되풀이되는 구조조정

국내 오토바이 시장은 대림자동차와 S&T모터스(옛 효성모터스), 그리고 수입기종이 분할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오토바이 시장점유율은 대림(47.0%)·수입(38.4%)·S&T모터스(14.6%) 순이었다. 수입기종의 점유율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해 왔다. 2003년 수입자유화 조치가 시행된 뒤 2004년 17.9%였던 수입기종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07년 43.4%까지 급증하다, 지난해 경제위기를 맞아 잠시 주춤한 상태다.

미국의 할리데이비슨이나 일본의 혼다·스즈키·가와사키 등 고배기량 제품이 위에서 누르는 형국이라면, 중국의 저가제품은 아래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국내 오토바이 업계는 고급사양과 저가사양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대림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흘러나오자마자, S&T모터스에서도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다. 산업·정책적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서는 국내 오토바이 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부의 오토바이 관련 정책이 오토바이 산업의 사양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륜차 책임 보험료가 큰 폭으로 인상된 데다 내년부터는 배기량 125시시 미만 오토바이도 전용 면허증을 따야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오토바이 운행에 대한 부담이 커진 만큼 판매 축소가 예상된다.
 
‘오토바이는 사치스럽거나, 저급하고 위험하다’는 부정적 인식, 자동차 위주의 도로 인프라, 자동차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도 오토바이 산업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이다. 친환경 녹색성장을 강조하는 최근의 분위기 역시 오토바이 산업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전거로 수요층이 분산될 수 있고, 전기오토바이가 개발돼 있지만 가격이 비싸 상용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이 때문에 노사는 오토바이 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이경수 지회장은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자전거의 예처럼 오토바이 역시 공장은 사라지고 중국산 OEM제품의 판매망만 남게 될 것”이라며 “정부만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행을 연기하면, 오토바이 산업의 구조조정 요인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21년입니다. 20년 동안 한솥밥을 먹어 온 식구들입니다. 하지만 당장 회사가 살아야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노현동(48) 대림자동차공업 상무(기획·행정부문)의 말이다. 그는 현재의 적자 구조로는 회사를 운영할 재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해 줄일 수 모든 것을 줄여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림자동차의 매출구조를 살펴보면 이륜차부문이 70%, 자동차부품부문이 30%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 부품의 90%가량이 현대·기아차에 납품된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륜차 부문이다. IMF 전 30만대를 넘어섰던 국내 오토바이 수요는 지난해 16만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구매력 저하가 때문이었다. 대림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7만8천여대를 판매했다. 올해는 5만6천대 판매하는 데 그칠 것으로 회사측은 보고 있다.

“생산량을 감안하면 올해만 적자가 120억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언제까지 적자를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대림자동차는 공장부지 이전도 검토 중이다. 21만4천877제곱미터(약 6만5천평)에 달하는 현재의 공장부지를 팔아 빚을 갚고, 땅값이 싼 곳으로 이사가겠다는 것이다. 밀양·창녕·상주·무안 등이 새로운 공장부지로 거론되고 있다. 통근 가능권을 벗어날 경우 상당수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일터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

“지금의 공장 설비를 풀가동해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연간 11만대를 팔아야 합니다. 11만대 이상이 팔려야 그때부터 이익이 납니다. 오토바이 산업의 부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도 어려운 선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구은회 기자


 “해고를 하지 않고도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습니다. 회사측은 해고 회피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해고 절차를 밟는 데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이경수(42·사진) 금속노조 대림자동차지회 지회장의 말이다.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살 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림자동차가 구조조정을 하면 그 여파가 전국적으로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700여명의 사원과 4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120여개 업체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 전국 100여곳의 대리점과 2천여곳의 오토바이센터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됩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노동부의 각종 지원을 활용한 공장 회생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봐야죠. 조금씩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하니 1년 정도 버티며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순환휴직도 하고, 교육프로그램도 가동해야죠. 구조조정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합니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의 대립은 노동자들의 격한 저항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 지회장은 “지난 여름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대림차 노사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회가 공장 점거농성이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지회는 지회대로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쌍용차지부 투쟁이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커진 것 같아요.”

이 때문에 이 지회장은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선 지회의 투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회사측을 상대로 유혈 투쟁을 벌이기보다는 정부를 상대로 제도개선 투쟁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공장에서 열심히 일만 해 온 노동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일터에서 쫓겨날 겁니다.”  구은회 기자



글로벌 경제위기로 우리나라 경기까지 꽁꽁 얼어붙으면서 국내 오토바이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내수 침체와 수입 오토바이의 강세 속에서 국내 오토바이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림자동차의 경우 오토바이 수입자유화 조치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 2001년 연간 10만대의 오토바이를 생산했다. 그러다 2003년 수입이 개방되면서 생산량은 7만7천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입산이 들어오기 전 77%에 달했던 대림자동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2007년 42%까지 줄어들다가, 지난해 49% 수준을 회복했다.
국내 오토바이 완성차 제조업체는 대림자동차와 S&T모터스(옛 효성모터스) 등 두 곳이다. 이들 업체는 특히 저가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산의 도전 앞에 맥을 못추고 있다. 국내 생산시스템을 가동해서는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며, 아예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자사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OEM제품 판매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오토바이 산업을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다. 오토바이 주 수요층인 자영업자들은 경제위기를 맞아 중고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대림자동차가 2000년 자사 고객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토바이 이용고객 가운데 72%가 상업 종사자였다. 자영업의 위축이 오토바이 판매 감소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오토바이 관련 규제 강화 정책이 오토바이 판매 감소와 해당 기업 노동자의 고용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오토바이 산업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경수 금속노조 대림자동차지회 지회장은 “현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오토바이 산업에 적용해 관련 지원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전용 도로 정비 등에 투입되는 예산의 일부를 오토바이 산업에 나눠 달라는 것이다.
“친환경 전기오토바이가 개발돼 있지만 성능 대비 가격이 비쌉니다. 판매가 극히 저조한 상황인데요. 자장면 배달하는 노동자에게 값비싼 전기오토바이를 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하지만 동사무소나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이 기존의 오토바이를 전기오토바이로 교체해 사용할 경우 정부가 친환경 정책에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지회장의 생각이다.
사용자들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노현동 대림자동차공업 상무는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 줘야 한다”며 “도로인프라 확충과 보험제도 개선,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오토바이 구입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은회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