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을 벌이는 동안 비정규직은 대책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덕분에 비정규직 문제가 공론화됐다. 그러나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해 온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잊혀 가고 있다. 기륭전자는 불법파견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됐음에도 해당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은 외면했다. 기륭전자 분회원들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과 집회 끝에 노사 간 교섭이 열렸지만 끝내 결렬됐다. 급기야 회사측은 공장 터를 매각하고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8명을 만나 그들의 속 얘기를 들어봤다.


#1. 24일 오후 2시
기륭전자 신사옥 앞 최동렬 회장, 김소연 분회장과 만나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준비하던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과 최동렬 회장이 우연히 마주쳤다. 김 분회장은 승용차로 향하던 최 회장에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를 에워싼 비서진들로 인해 접근조차 못했다. 

“회장님 교섭 안 하십니까?”
“교섭 대상이 아니잖아!”
김 분회장이 허공에 대고 소리쳤지만 차에 오른 최 회장은 창문을 반쯤 내려 한 마디만 남긴 채 떠났다.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신사옥 건물에는 ‘대법원은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옥 맞은편 아파트에는 ‘소음 고성방가에 아이들 교육 다 망친다’ 등의 입주민 현수막과, ‘최동렬 회장은 고용을 직접 책임져라’는 기륭전자분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짝수 날에는 회사측이 집회 신고를 내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1인시위를 한다. 두 명 이상 함께 있으면 불법 집회로 간주한다는 경찰의 경고에 따라 유흥희·이인섭 조합원은 서로 떨어져 사옥 앞에 앉았다. 사옥 주변에서는 배영훈 사장 등 경영진의 출입에 따라 비서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사옥 현관이 열릴 때 그 틈 사이로 건물 안에서 대기하는 회사측 관계자들과 용역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집회를 열겠다면서 조합원들을 사옥 앞 인도로 밀어내며 실랑이를 벌였다. 회사측 관계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집회를 대신했고, 집회를 찍겠다며 준비한 카메라로 조합원을 촬영했다.
 
유씨가 “찍지마”라고 외치면, 이들은 웃으면서 더 다가가 얼굴에 렌즈를 들이댔다.
조합원들이 준비한 낡은 피켓들은 바람에 날려 거리에 나뒹굴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고성이 오가도 싸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해고한 적 없어! 당신이 일하기 싫어 나갔잖아! 누가 점거하래?”
회사측 한 관계자가 유씨를 향해 험한 말을 했다. 그도 기억하는 걸까. 이날은 5년 전 기륭분회 조합원들의 현장 점거농성이 시작된 날이었다.

#2. 24일 오전 10시
5년 전 8월24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생일, 농성 5돌

2005년 8월24일 오전 10시 기륭공장 안. 잡담 등의 이유로 문자 해고통지를 받은 40대 기혼 여성 120여명이 예전에 일하던 자리에 앉았다. 그중 한 명이었던 유씨는 “처음 해 보는 파업에 두려움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섞여 떨렸다”며 “당연히 회사가 먼저 대화를 요청할거라 생각했고 3일이면 끝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5년 후 같은날 그는 아침 8시에 대화를 요청하기 위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소재 최동렬 회장 자택으로 향했다. 동시에 다른 조합원들은 신사옥 앞 출근투쟁에 나섰다. 박행란 조합원은 파업 첫날 배포된 노조 소식지를 5년 동안 매일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노조 소식지가 너덜해질 동안 회사 직원들도 바뀌었다. 아침 8시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출근 투쟁을 하던 박씨는 “같이 일한 직원들이 우리에게 ‘떨어져 죽어라’고 말할 때 정말 같은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그 사람들도 지금은 해고를 당했는지 3분의 1이 새 직원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김소연 분회장은 “여성들의 공장 점거농성은 90년대 이후 기륭분회가 처음이었을 것”이라면서 “불법파견 앞에 무기력했던 비정규직법을 공론화시키고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씁쓸해했다.

오전 10시. 출근 투쟁을 마치고 함께 늦은 아침을 먹는 중 조합원들 사이에서 5년 전 점거 농성 얘기가 나왔다. “생일도 아닌데 뭐하러 기억해! 생각도 하기 싫어.” 이인섭 조합원은 “투쟁 날짜, 년 수 얘기 하지 말자”며 말을 잘랐다. 그가 5년 동안 등에 붙이고 다녔던 짙은 남색 천 벽보는 색이 바래 옅은 파란색으로 변했다.


#3. 24일 오후 7시
집으로 가는 길 “아기 낳을때까지 끝낼 수 있을까요?”


아기의 크기는 1.18센티미터였다. 임신 8주차 이미영 조합원은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다며 이날 처음으로 웃었다.
“미영아 너가 애 낳을 때까지 우리 투쟁을 정리할 수 있을까?”

6개월 전 엄마가 된 강화숙 조합원이 건넨 축하인사다. 월요일 저녁은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하다. 연대투쟁이 대개 수요일 이후에 몰려있어 월요일은 다른 직장인들처럼 오후 7시께 투쟁을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다.

“일 마치고 저녁에는 조합원들과 집회도 가고 술도 한잔하고 주말에는 산에도 가고…. 평범한 직장인 같은 삶이 나에게도 올까요?”
출근투쟁, 일정점검 회의, 연대집회 참여, 문화제 주최, 소식지 정리 등. 이씨의 일상은 투쟁과 긴장의 반복이다. 모처럼 이른 귀가에 집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동네 아이들의 웃음과 주부들의 수다, 텔레비전 소리가 부엌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집에 오면 지쳐 쓰러져 자느라 5년이 금방 갔어요. 집에 들어오면 조용히 쉬고 싶은데, 다가구주택이라서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까지 들려 귀에 거슬리더라고요(웃음). 이제야 저녁 풍경이 일상처럼 느껴져요. 처음엔 적응이 안 돼 신랑이 ‘집이 여관이냐?’고 섭섭해할 정도였죠.”

저녁을 먹고, 전화로 남편의 안부를 묻고, 텔레비전 드라마도 보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투쟁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시지 않는다. 장기 투쟁의 후유증이다.

“그간 싸운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오래 싸우다 보면 마음이 피곤해져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아요.”

이씨는 장기 투쟁의 원동력 중 하나로 실낱같은 희망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분회장 단식 농성장에 최 회장이 찾아와 기적같이 교섭이 진행됐을 때 모두 현장에 복귀하는 줄 알고 꿈같은 날을 보냈다”며 “매번 정말 끝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교섭이 시작돼 혹시나 하는 1%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지자 이씨의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는 내일이면 아기가 2센티미터로 자라 있을 거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4. 25일 새벽 2시
컨테이너 박스 안 기륭분회 조합원들도 신종플루 공포


기륭분회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신종플루가 화제다. 조합원 8명 중 4명이 감기 증상을 보이지만, 고열에 시달리는 조합원을 제하고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투쟁기금이 발목을 잡는다. 이날 컨테이너 사수 당번인 윤종희 조합원은 기침을 하며 잠이 들었다.

“수없이 흔들렸지만 싸움을 시작하게 된 직접고용에 대한 의지만큼은 꺾여본 적이 없어요. 잃은 것도 많지만 평생 연대하며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컨테이너는 철탑·천막 에 비하면 천국이에요.”

컨테이너는 자동차 소음도, 전조등 불빛도,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도, 찬 새벽 바람도 막지 못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이 밝아오는 동안에도 윤씨의 기침 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이들의 투쟁을 처음부터 지켜본 지역 주민 ㄱ(33)씨는 “처음엔 마음속으로 응원도 했지만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지켜보는 주민들도 힘들다”며 “앞으로 그들이 뭘 하든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ㄷ(52)씨는 “이 동네는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비정규직이라도 일을 하고 싶지만 자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며 “할 만큼 했으니 끝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5. 25일 아침 8시
기륭전자 신사옥 앞 집회 신고는 타결, 노사관계는 미결


“(노사가 집회 신고를)타결 하길래 파업도 잘 해결되는 줄 알았어요.”
홀수날은 기륭분회가, 짝수날은 회사측이 집회하기로 서로 합의를 본 것에 대해 관할 경찰관은 이같이 말했다. 합의에 따라 이날 조합원들은 휴대용 스피커와 CD플레이어를 연결해 신사옥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경찰이 측정한 이들 소리의 강도는 63데시벨, 집시법에 따르면 주거지역과 학교의 경우 65데시벨(야간 60데시벨)을 넘을 수 없다. 매미의 평균 울음소리 65데시벨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주기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해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불법파견을 판정받고도 피해 보는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않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받고 싶어요. 또 기륭전자 투쟁을 시작으로 알려진 잘못된 비정규직법에 대한 개선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요.”

오석순 조합원이 투쟁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회사측은 조합원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조합원들은 소음 기준치 데시벨을 넘길까봐 민중가수 연영석의 ‘간절히’노래를 따라 읊조리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투쟁 1천476일째 아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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