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노동건강연대 등 12개 단체와 함께 ‘건설노동자 석면피해 캠페인 추진위원회’를 발족한 건설산업연맹이 28일부터 본격적인 ‘석면피해 건설노동자 찾기·지원’ 캠페인에 들어갔다. 캠페인단은 이날 서울 상암동 SH공사 아파트 건설현장을 찾아 건설노동자들에게 석면피해 예방지침과 피해진단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다. 원진녹색병원은 건설노동자를 상대로 엑스레이 촬영과 폐기능 검사 등을 무료로 실시했다.

국내 석면 82%는 건축자재

사회적으로도 석면질환을 앓고 있는 지역주민과 석면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에 반해 건설현장에서 석면함유 건설자재를 다루는 건설노동자들의 질환 사례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국내 석면의 82%는 건축자재로 사용된다. 자동차부품(11%)과 섬유제품(5%)에 비해 사용비율이 월등하다.

5월에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건축용 시멘트에서 기준치의 20배를 초과하는 석면이 검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 목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허용치의 5배가 넘는 석면함유 시멘트가 검출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석면함유 백색시멘트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석면은 저렴하고 보온·단열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널리 사용됐다. 석면 질환의 잠복기를 감안하면 앞으로 석면피해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에 지어진 건물에 대한 재개발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돼 철거업무에 종사하는 굴삭기·덤프 운전자 등 건설노동자들 역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직업병이라는 인식 부족

석면시멘트의 가루분말에 노출되는 건설노동자들이 일차적으로 석면에 노출될 위험성이 가장 크다. 반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확산되지 않고 있다. 대규모 건축현장과는 달리 실내 리모델링 공사는 정부 관리감독의 사각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경우 추락이나 낙하·붕괴 등 사고성 재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창년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장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업무상사고에 대해서는 대응을 해 왔지만 건설노동자들의 직업병에 대해서는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면함유 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미장·방수·타일·용접·배관·닥트 담당자들은 보통 휴일에 일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된 백색 석면시멘트를 사용하는 타일방수작업은 전체 공사의 마무리 공정에 해당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기단축을 위해 휴일에 작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건설노동자들도 이미 석면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잘못된 식습관이나 담배에 의한 폐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석면질환 건설노동자 첫 산재 인정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석면 자재를 취급하다 악성중피종에 걸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가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가 나왔다. 건설노동자인 박아무개씨는 95년 전남 영암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5개월 동안 석면함유 석고 시멘트판을 천장에 붙이는 작업을 보조하면서 청소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천장에서 하얀가루가 많이 날려 바닥에 쌓일 정도였지만 마스크 같은 보호장비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직한 박씨는 10년이 흐른 2006년 말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정했지만 오히려 건설사가 산재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박씨가 마스트 등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석고 시멘트판을 다룬 사실이 악성 종양 발병과 관련이 있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까지 석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은 적은 있었지만, 석면 자재를 다룬 건설노동자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석면질환 무료 건강검진 실시

건설산업연맹은 올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원진녹색병원·국제건설목공노련 등과 함께 석면 무료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석면질환 관련상담을 원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핫라인 상담전화(02-490-2097, 02-841-0293)도 개설했다.

석면특별법 제정도 시급하다. 박병채 변호사(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운영위원)는 "현재 석면질환에 대해 피해보상을 받는 방법은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내는 것"이라며 "소송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환의 인과관계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고, 산재신청은 3년이라는 시효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포항·울산·광양·여수·당진·군산 등 플랜트건설현장과 안산·성남·대구·광주·대전·부산 등 지역의 건축공사 현장에서도 석면피해자 찾기 캠페인이 진행된다. 석면피해 건설노동자 지원제도 마련을 위한 시민 대상 캠페인은 10월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악성중피종 산재보상건수 20건에 불과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의 일반적인 굵기는 머리카락의 5천분의 1로 매우 가늘다. 하지만 호흡을 통해 노출됐을 경우 10년에서 40년의 잠복기를 거쳐 석면 관련 질환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석면폐증(석면에 의한 폐의 섬유화)과 폐암·악성중피종(흉막이나 복막에 생기는 암) 등을 들 수 있다.
국제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억2천500만명이 석면에 노출돼 있고, 이 가운데 연간 9만명이 석면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대표적인 석면 질환인 악성중피종 사망자는 영국의 경우 100만명당 32명, 네덜란드 21명, 프랑스 13명, 미국 8명, 일본 6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악성중피종으로 인한 사망자는 2006년까지 337명. 악성중피종 환자 대다수가 직업성질환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산재보상건수는 2007년까지 19건에 불과했다. 조현미 기자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건설업의 석면피해 통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악성중피종 위험 상위 20위 직업 안에 절반이 건설관련 직종이다. 목수와 배관공·전기기사·조선공·건설업 관리자·페인터공·미관공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영국 암저널은 건설현장 형틀·목수 노동자 17명 가운데 1명이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영국에서 1천749명이 석면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는 2020년을 정점으로 악성중피종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가 약 3천명에서 3천500명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90년부터 99년 사이에 석면폐로 인한 사망자가 건설업에서 24.6%(702명)로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는 배관공이 238명(8.3%)으로 가장 많았고 전기기사·목수·보온·용접공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99년 기준 악성중피종으로 인한 사망자 역시 건설업이 14.2%(77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석면심포지엄에서 김동일 성균관대 교수(산업의학교실)는 석면에 의한 국내 악성중피종 환자가 2032년에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면 수입이 최고조에 달한 9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잠복기를 감안하면 2032년에 악성중피종 환자 발생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김원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선진국은 석면 피해자 통계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신뢰도가 높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통계는 모든 부분에서 빈약하다”며 “건설업의 경우 외국의 사례를 통해 봤을 때 (석면 피해가) 가장 염려되는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극히 부족해 피해와 위험 규모조차 추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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