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노사민정 협력으로 탄생한 최초의 맞춤형 직업훈련학교. 전남 광양시에 위치한 광양만권HRD센터(이사장 김재무)를 설명하는 말이다. 지난달 10일 개원한 광양만권HRD센터는 조선과 철강산업이 발달한 지역의 실정에 맞춰 노사민정이 기획하고 재원을 모아 만든 전국 최초의 지역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15일 광양만권HRD센터를 찾은 이유다.



광양만, 조선산업의 메카로 떠올라

남해를 껴안고 들어선 광양만. 광양지역은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위치한 대표적 철강산업단지다. 포스코가 광양만에 선박용 후판을 만드는 후판공장 신설을 결정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광양 후판공장을 착공했다. 내년 7월에 공장이 준공되면 2011년부터 연간 700만톤의 후판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위 후판 생산업체로 도약한다.
이 같은 지역의 산업변동은 노동시장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후판을 써야 하는 조선업체들이 입지가 좋은 광양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광양시를 찾은 날에도 광양만에 들어선 조선업체가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광양지역에서는 내년에 1만명 이상의 고용창출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만큼의 인력공급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년 800명가량의 조선 기능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투입 가능한 인력은 연간 28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점에 착안해 탄생한 것이 광양만권HRD센터다. 새롭게 조선산업의 메카로 떠오르는 광양에서 우수한 조선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등 지역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산위기 딛고 센터 개원

지난해 4월 노사발전재단의 지원으로 한국노총광양지부와 순천광양상공회의소가 함께하는 광양지역노사발전협의회(광양협의회)가 출범하면서부터 센터 설립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광양협의회가 지역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조선 기능인력 양성사업을 검토했고, 지난해 10월 광양협의회·노사발전재단·광양시·광양시의회·노동부여수지청·전남테크노파크 등 7개 단체가 '광양만권 조선산업 HRD센터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설립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초 5억여원의 설립 재원을 투자하기로 한 전남테크노파크가 "노동조합과 같이 사업을 할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김영우 한국노총 전남노동교육상담소장은 "전남테크노파크가 노조에 배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시 관료들도 처음에는 노조를 사업파트너로 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광양협의회·광양시·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로 구성된 ‘광양만권 일자리창출·인적자원개발 사업단’(사업단)이 발 벗고 나서 노동부의 ‘지역 맞춤형 일자리창출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운영비의 일부(7억6천300만원)를 마련했다. 노사발전재단도 2천600만원을 보탤 예정이고, 광양시도 5천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모자란 재원은 지역의 뜻있는 민간의 투자를 받았다.

“취업 희망 안고 왔어요”

초여름 뜨거운 한낮,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가니 조그마한 학교 건물이 나타났다. 광양시 진월면 마룡리에 소재한 광양만권HRD센터. 노사민정 협력모델답게 광양시가 부지와 건물을 제공했다. 폐교인 마룡분교 건물을 리모델링했고, 노사가 힘을 모아 숲을 이뤘던 운동장의 잡초를 제거해 직업훈련학교로 만들었다.
광양만권HRD센터는 소박했지만 명실 공히 직업훈련학교의 모양새를 완벽히 갖춰 놓고 있었다. 지난달 1일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훈련생은 62명. 광양·순천·여수지역만이 아니라 충남 논산, 서울에서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한다.
1기생들은 5개월(720시간)간 교육을 받는다. 4개월은 이론과 실습교육을 받고, 나머지 1개월은 현장경험을 한다. 대부분의 교육이 실기 위주로 이뤄진다. 대다수 훈련생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 생애 첫 직장을 갖겠다는, 혹은 재취업을 통해 제2의 도약을 꿈꾸는 이들이다. 20~40대에 걸친 연령대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택시를 15년간 몰았는데, 살기가 쉽지 않네요. 용접기술을 배우면 조선소에 취업할 수 있다고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올해 47살의 이기동씨. 그는 아들, 딸 같은 훈련생들과 생활하면서도 “낯설지만 즐겁다”고 했다. 이씨는 ‘마지막 희망’인 새로운 기술을 배워 조선소에 취업하겠다는 생각뿐이다.
김형수(23)씨는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취업하기 힘들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전문대 휴학 중입니다. 정말 취업하기 힘드네요. 전망도 밝지 않고. 일단 용접자격증을 따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취업하는 게 목표입니다.”



열정적인 학생과 베테랑 교사의 하모니

광양만권HRD센터는 용접실습동 2곳과 이론교육장 1곳을 비롯해 기숙사·행정지원실·구내식당 등을 완비해 놓고 있다. 용접실습동 한 곳에서는 아크용접을 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가스용접을 통한 절단과 연마 등을 실습한다. 용접실습장에는 모두 36개의 용접부스가 마련돼 있다. 용접시 발생하는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후드도 부스마다 장착돼 있다.

훈련생들이 이론교육을 끝내고 실습교육을 시작한 지 사흘째에 접어든 날이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실습에 임하는 훈련생들의 눈이 반짝인다. 교사가 훈련생들에게 꼼꼼히 용접실습교육을 실시하는 동안 훈련생은 바짝 긴장하며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교사의 지도 속에 난생 처음 잡아보는 용접기.

훈련생 못지않게 교사들도 열정적이었다. 광양만권HRD센터에는 3명의 베테랑 교사가 있다. 모두 20년 이상 포철기연·삼성중공업 등 산업현장과 직업훈련학교에서 용접을 하고 기술을 가르쳐 온 가르쳐 온 이들이다. 송재영(45) 교사는 포철기연에서 20여년 근무했다. 순천의 한 직업훈련학교에서 용접기술을 가르치다 센터 설립소식을 듣고 일터를 옮겼다.

“우리나라 직업훈련은 도태돼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민간 직업훈련은 너무 열악합니다. 이윤창출을 위주로 하다 보니 실무교육이 부족하고 교사들의 실력도 좋지 않아요. 센터는 비영리 직업교육기관이니까 직업훈련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죠.”

벤치마킹 대상된 노사민정 협력모델

광양만권HRD센터의 최대 장점은 지역 노사민정 협력으로 탄생한 맞춤형 직업훈련학교라는 것이다. 이를 어렵게 탄생시킨 주역인 광양협의회·광양시·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실무단을 운영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날도 김영우 소장·서성기 광양항운노조위원장·김길문 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 사무국장·황명하 광양시 담당자 등이 모여 센터 운영방침에 대해 논의했다.

“후판공장 유치 이후 조선사들의 입주상담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광양은 내년까지 일자리가 1천여개 창출될 전망인데요. 앞으로 여성에게도 더 개방했으면 합니다.”(황명하씨)
“사측은 훈련생들이 취업까지 연결되도록 해서 센터가 성공적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년에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다기능교육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김길문 사무국장)

그런데 센터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노동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지 못한 것.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공공 및 민간재원이 같이 투자된 비영리 사단법인이 없었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현재는 거의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광양만권HRD센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지만 벌써부터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노사정 협력모델을 먼저 실천한 부천시 관계자들이 직접 다녀가는 등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과제는 '고용창출'과 '공공적 직업훈련'

광양만권HRD센터의 남은 과제는 사단법인 허가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최초의 노사민정 협력 맞춤형 직업훈련학교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취업, 즉 고용창출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센터 관계자들은 "문제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개원한 지 한 달도 안 돼 치른 용접자격증 필기시험에서 훈련생의 85%가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김재무 센터 이사장은 “모든 학생이 중도탈락 없이 취업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민정의 지속적 협력과 직업훈련의 공공성 강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정용영 노사발전재단 노사협력증진팀장은 “광양만권HRD센터는 또 하나의 직업훈련기관 설립을 넘어 지역 노사민정 협력체제의 성공모델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재무(49) 이사장은 이른바 ‘뜻있는 민간투자자’로 불린다. 광양시 노사민정이 광양만권HRD센터를 설립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 문제였다. 투자를 약속한 전남테크노파크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재원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전남도의회 의원이자 지역 유지이기도 한 김재무 이사장이 "지역 일자리 창출사업이라면 도울 수 있다"고 나선 것이다.
왜 노사관계나 직업훈련에 문외한인 그가 참여를 하게 된 걸까.
“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4년간 일하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이 많았습니다. 평소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그러던 차에 사업단의 제안을 받은 겁니다. 선뜻 동의했죠.”
이사장직을 맡고 보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부 기관에서 재원지원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애초의 뜻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와 사, 광양시가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데다, 학생들이 센터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들 기대가 매우 커요. 6월이면 학생 모집이 어려운 시기인데도 지원인원이 넘쳤으니까요. 모든 학생이 중도탈락 없이 취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 이사장은 광양만권HRD센터가 지역의 비영리 교육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센터를 영구적 비영리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공공성을 담보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노사민정 단체들도 여기에 맞게 각자의 책임을 다했으면 합니다.” 
 
                                                                                                                                                             연윤정 기자



광양만권HRD센터를 설립하는 데 한국노총 광양지역지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현재 김영웅 지부 의장은 ‘광양만권 일자리창출·인적자원개발 사업단’ 의장을 맡고 있다.
김 의장은 "광양은 원자재 공급선도 가깝고 일조량도 풍부해 조선산업을 하기에 좋다"며 "포스코 후판공장 착공되면서 기능인력을 양성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당시 노동부도 노사민정 협력을 강조하고 있던 터였다.
“광양만권HRD센터가 최초의 노사민정 협력모델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개원식 때도 외부인사들이 많이 부러워했어요.”
김 의장은 그러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가 철회한 전남테크노파크를 보세요. 노조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빠진 것 아닙니까. 앞으로 노사민정을 묶어 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 의장은 광양만권HRD센터의 최우선 과제로 ‘취업’을 꼽았다.
“훈련생들의 취업이 보장돼야 합니다. 1기생 62명이 전원 취업할 수 있도록 노사가 최선을 다해 취업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2기, 3기도 희망을 갖고 광양만권HRD센터를 믿고 찾아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노사민정이 함께하는 사업은 힘들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 모델이 성공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벤치마킹을 할 것이고, 그러면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겠습니까.”  
 
                                                                                                                                                             연윤정 기자


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회장 송병원)도 광양만권HRD센터 탄생의 주역 중 하나다.
MOU 체결 뒤 지지부진하던 사업을 광양협의회·광양시·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로 구성된 ‘광양만권 일자리창출·인적자원개발 사업단’이 나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포스코 출신의 송 회장은 현재 회원사 55개사, 8천500명으로 구성된 광양제철소외주파트너사협회를 이끌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자체적인 기능향상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주사 입장에서는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교육기관이 절실하다고 했다. 송 회장은 "광양만권HRD센터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외주사가 기능향상 훈련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E-러닝 교육에도 한계가 있고요. 전문HRD교육기관이 필요했는데, 때맞춰 센터가 생긴 겁니다.”
자체교육과 인터넷교육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집합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게다가 광양은 마땅한 훈련기관이 없었다. 순천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광양만권HRD센터가 세워지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포스코 직원도 처음부터 우수하지는 않아요.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키지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합니다. 후판공장이 준공되는 내년이면 조선소가 크게 증가할 겁니다. 센터와 같은 맞춤형 교육이 절실한 때입니다.” 
송 회장은 “센터가 조선뿐만 아니라 전기·기계·제어부문까지 교육범위를 넓혀 나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연윤정 기자
 
이성웅(67) 전남 광양시장. 그가 올해 신년사에서 내건 10대 공약 중 하나가 광양만권HRD센터 출범이다. 그만큼 광양만권HRD센터 설립에 많은 공을 들였다.
“광양은 전통적으로 철강과 항만이 축이었으나 포스코 후판공장이 내년 7월 준공되면 조선까지 묶여 도시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2010년까지 1만여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한데 신규인력과 양성교육이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생긴 거죠.”
이 시장은 "지역 고용창출을 위해 노사민정이 광양만권HRD센터를 세우자는 제안은 정말 매력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산업수요에 맞춘 맞춤형 직업교육이 필요했습니다. 그중 조선은 종합기술이죠. 용접은 기본이고 배관·설비 등 기능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맞춤형 직업교육이 어디 쉽습니까. 교수진과 장비를 보강해야 하고 부지도 확보해야 됩니다. 센터 설립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광양시는 학교 부지를 무상 제공했으나, 약속했던 재원 5천만원은 아직 투자하지 않고 있다.
“지역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기능·기술교육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재원이 필요합니다. 지자체·중앙정부·산업체가 협조해야 합니다. 광양시도 도의회를 설득해 반드시 예산을 확보하겠습니다.”
이 시장 역시 광양만권HRD센터가 전국 최초의 노사민정 협력모델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서로 이질적 기관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만났잖아요. 서로 신뢰관계를 갖고 지속가능한 모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직업훈련과는 다른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교육을 해 나가야 하고요.”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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