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하철노조(위원장 김태진)의 파업이 5일째로 접어든 1일 오전 8시 부산시청 앞.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출근하는 공무원들을 맞고 있다. 통근버스에서 우르르 공무원들이 내릴 때마다 이종민(42) 노조 기술지부 조합원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부산지하철노조의 파업으로 공무원들 업무가 배로 늘었어요.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가 100%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역무원을 대신해 공무원 300여명을 투입했거든요.” 어쩐지 이들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부산 공직사회에서는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의 사주로 월급 몇 푼 더 받으려 파업한다’는 유언비어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2007년 이후 2년 만인 지난달 26일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지하철노조 등 대부분 지하철노조가 경영진과 함께 ‘고객감동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원감축과 초임삭감으로 연신 두드려 맞으면서도 ‘신의 직장’이라는 꼬리표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공기업에 다니는 이들이 파업의 깃발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임금 몇 푼 때문이었을까.

앙꼬 없는 찐빵, 기관사 없는 지하철?

공사는 내년 말 3호선 반송선(미남~안평 12.7킬로미터)을 개통한다. 반송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무인운전 시스템 전동차로 기록될 예정이다. 총 사업비 1조500억원을 투입해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개발한 반송선 경전철은 처음부터 완전자동 무인운전방식으로 설계됐다. 운전실도 없다. 대신 모양부터 보통 전철과는 사뭇 다르다. 차체가 작고 중량이 가볍고 고무바퀴로 돼 있다.

부산시는 “무인운전 시스템 경전철은 미국 16개 노선을 비롯해 총 14개국 57개 노선에서 30년 이상 안전성이 검증된 운행방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외국의 57개 노선 중 32개가 짧은 구간을 이어 주는 공항 내 이동시설(APM-Automated People Mover)에 불과하고 반송선과 같은 도심의 무인 운영 전철은 25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반송선의 경우 기존 노선인 3호선보다 승객 수송량이 2.2배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운행구간의 64%가 지하구간이어서 화재가 발생하면 대책이 없다.

특히 반송선 경전철은 국내에서 직접 개발한 것이다. 지금까지 상업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 부산 시민들이 ‘실험용 승객’이 되는 셈이다. 노조는 무인운전 시스템 철회와 충분한 인력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반송선, 지하철 노동자의 불안한 미래

김태진 위원장은 “반송선 때문에 시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위험에 시달리고, 지하철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올해 초부터 공사는 정원의 10%인 340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송선 신규개통에 따른 인력충원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공사는 노조의 파업 직전에야 반송선에 기존인력 135명 재배치하는 내용을 포함해 227명 인력충원안을 제시한 상태다.

현재 부산지하철의 인력은 킬로미터당 32.8명으로 서울메트로(67.8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매표자동화에 따라 매표소가 폐쇄되면서 역무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무인매표가 부산에서는 이미 4년 전에 도입됐다.

반송선은 지하철 노동자의 불안한 미래다. 역무원이 사라지고 기관사도 사라진다. 차량정비업무도 외주용역으로 대체될 공산이 높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역무원·기관사 없는 완전 무인자동 시스템 전동차는 반송선(2010년 12월 개통)을 시작으로 용인(2010년 6월 개통)·김해(2011년 4월 개통)·의정부(2011년 8월 개통) 등 전국 곳곳에 도입된다.


파업 장기화 조짐, "흔들리지 않겠다"

이번 파업이 시와 노조 간 반송선 무인운전 안전성 논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교섭은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파업 나흘 만에 노사 간 실무접촉이 이뤄졌지만 교섭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노조의 파업은 지난해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된 이후 첫 대규모 파업이다. 노조는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파업 돌입 3일 전 필수인원 860명(평일 기준)의 명단을 회사에 통보했다. 조합원들이 너도나도 ‘파업에 참여하고 싶다’며 필수인원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구해 노조가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2천900여명의 조합원들은 처음 겪는 필수유지업무 파업에 설레는 표정이다. 그동안 직권중재로 인한 불법파업 위험을 안고 노포 차량기지창 점거파업을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기 때문이다. 남원철 쟁의대책위원회 교선국장은 “과거에는 전 조합원들이 경찰력 투입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며칠 밤을 새웠다”며 “지금은 평상시와 똑같이 출·퇴근하고, 시민들을 만나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해 보는 열린 공간에서의 합법적 파업은 조합원들의 활발한 동참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필수유지업무제로 부산지하철은 평소 대비 61%의 운행률을 기록하고 있다. 보통 때보다 4분에서 15분 정도 지연되는 탓에 파업 초반에는 시민들의 거친 항의가 이어졌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분위기다.

부산지역 3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영효율화보다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 더 중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시민공청회와 안전 타당성 조사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무인운전 전동차 도입 이전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부터 제대로 밟으라는 지적이다.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으로 무인운전 전동차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노조 “사용자 필수유지업무 규정위반으로 고발”
사용자 처벌규정 없어 논란일 듯
부산지하철노조의 파업은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 1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대규모 파업으로 노사정 관계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 당시부터 애매한 규정이나 불완전한 법 조항으로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달 30일 노동부에 7가지 논란에 대한 행정해석을 요청했다. 노조는 “부산교통공사가 필수유지업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할 방침이다.


◇공사의 전동차 증편은 불법?=부산교통공사는 파업 나흘째인 지난달 30일부터 임시열차를 32회 증편했다. 이날 부산지하철 운행률은 필수유지비율인 61.4%에서 64.7%로 소폭 증가했다. 노조는 “필수유지업무협정에 따라 노동자뿐 아니라 사용자도 필수유지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열차 증편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열차증편을 위해 공사가 대기근무조인 기관사들을 운행에 투입, 근무형태가 변경됐다.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필수인원만 근무하더라도, 근무형태를 변경해서는 안 된다.


◇필수인원 변경 사전통보 기간=필수유지인원 지정권한은 노조에 있다.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는 쟁의행위 돌입 3일 전에 필수인원 명단을 사용자에 통보해야 한다. 필수인원은 매일 변경이 가능하다. 그런데 법에는 필수인원 변경에 따른 절차가 없다. 실제로 노조가 필수인원 변경을 요구했으나 공사가 ‘통보기간’을 문제 삼아 한 차례 거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체근로 가능 직무범위=공사는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대체인력을 투입해 운행률을 75%까지 높이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법에는 필수공익사업장에 대체근로가 허용 가능하다고 돼 있을 뿐 세부조항이 없다. 때문에 다툼의 소지가 있다. 공공운수연맹 법률지원센터 이주환 공인노무사는 “쟁의권의 과도한 제한을 막기 위해서는 대체근로 가능범위를 필수유지업무 대상직무 외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기관사의 경우 이미 필수인원이 배치돼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은 역무원처럼 필수인원이 전혀 없는 직무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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