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10만명당 16명은 교통사고로 죽는다. 암, 뇌·심혈관계질환, 당뇨병, 자살에 이어 사망원인 6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연평균 1.5%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전체 교통사고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버스·택시·화물 등 사업용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사업용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는 사망사고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따르면 최근 10년(95~2005년) 간 사업용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는 모두 52만9천91건으로, 연 평균 2%씩 늘어나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장시간 노동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비교하면 사업용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가 비사업용 차량에 비해 6.7배, 사망사고는 5.3배, 대형사고는 무려 20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용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가 늘어나 이유는 무엇일까.

#.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7일 만난 김아무개(46)씨는 서울에서 인천 구간을 운행하는 광역버스 기사다. 그의 회사는 하루 일하고 다음날 쉬는 격일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김씨는 이틀째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최근 회사가 고유가를 이유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아 운행할 사람이 부족한 탓이다.

김씨가 이처럼 ‘따블근무’(쉬는날 출근하는 것)를 하면 ‘한탕(운행횟수)’당 2만원~3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하루 평균 5~6회 이상을 운행하기 때문에 10만원을 웃도는 돈이 손에 쥐어진다. 그는 10만원을 더 받기 위해 이틀간 총 40여 시간을 일했다.
“비몽사몽으로 운전을 하는데 운전사들 사이에서는 시쳇말로 ‘멍 때린다’고 해요. 군대에서 야간보초 서 보셨어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순간이 있잖아요. 멍 때리다가 대형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

#. 같은 날 저녁 9시, 서울 영등포의 한 기사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던 택시기사 윤아무개(48)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씨는 이날 오후 4시에 출근해 5시간째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까지 7시간을 더 일해야 한다.

윤씨는 “하루 10만원 가까운 사납금을 채우려면 지금보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지난해 죽은 동료를 생각하면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동료는 무리하게 일을 한 다음날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근경색.
윤씨도 매일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오히려 손님을 찾는다고 잠이 안 오지만 손님이 있으면 잠이 쏟아지는 게 사실이에요.”

무한 연장근로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59조

윤씨는 불법 도급형태의 일종인 ‘1인1차제’도 귀띔해 줬다. “회사에 12만원을 내면 스페어(쉬는차)를 골라 하루 종일 운행할 수 있어요. 24시간 꼬박 일하는 거죠. 한 달 26일인 만근을 못 채우는 사람들이 주로 지원하는데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이헌영 전국택시노련 서울본부 정책부장은 “1인1차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 한다”며 “과다한 노동시간을 이유로 노동부에 수차례 진정이나 고소를 넣어봤지만 근로기준법 제59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운수노동계는 죽음을 부르는 장시간 노동이 개선되려면 근로기준법 59조가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 59조가 운수노동자의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공중의 편의나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획일적으로 관철하기 어려운 사업의 경우, 엄격한 요건 아래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일시적으로 연장근로와 휴게시간 변경을 허용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공익’을 위해 운수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시간 노동은 공공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자동차노련이 지난 2007년 발표한 ‘버스운수업 근로시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근무시간이 길수록 교통사고 발생률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평균 실운전시간이 8.62시간인 1일2교대제 업체의 경우 교통사고 건수는 7.56건. 그러나 실운전시간이 15.12시간인 격일제 업체의 경우 13.46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시간이 긴 격일제가 1일 2교대제보다 78% 이상 교통사고를 많이 일으키고, 중상 및 사망교통사고 발생률 역시 40.6% 이상 더 높다. 사실 근로기준법 59조는 노동부는 물론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에서도 수차례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제는 국회가 해결해야”

지난 2006년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든 ‘제6차 교통안전기본계획(2007-2011)’에도 화물차·버스·택시 안전관리 강화의 주요 내용으로 ‘근로시간 개선’을 노동부가 추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피로 운전가능성이 높은 화물차·버스·택시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시간을 1일 구속시간과 연속운전시간으로 나눠 노동시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앞으로 5년 안에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를 절반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책은 쏙 뺐다. 재정지원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앞서 2002년부터 1년 동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기준법 59조 개정이 집중 논의됐지만, 사업주가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불가능하다’며 반발해 무위로 끝났다.
격일제가 일반적인 버스업계는 1일 2교대제를 전면 도입할 경우 인력충원 따른 추가비용이 연간 40억원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수노동계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하락 우려가 있어 정부의 재정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들어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59조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운수노조 민주택시본부의 요구로 지난해 12월 근로기준법 59조에서 운수업을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자동차노련도 ‘버스운전자 근로시간 단축 특별법(가칭)’을 올해 상반기 안에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이제, 국회의 선택만 남았다.
 
근로기준법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1.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2.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3.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4.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김미영 기자 ming2@

정영현 기자 andiba@



<2009년 3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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