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며칠째 1천500원대에 머물고 주가지수는 1천선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각종 국내외 기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해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거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급기야 노동부는 지난달 26일 이영희 장관이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올해 성장률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며 마이너스 2% 성장률을 제시했다.
경제위기는 곧 고용의 위기다. 마이너스 2% 성장률과 함께 등장하는 수치는 ‘취업자수 20만명 감소’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최근 통계청은 ‘1월 고용동향’에서 신규 취업자수가 10만3천명 감소하고 실업자는 7만3천명 증가해 85만명에 육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직자 73% 비경제활동으로 이동

문제는 공식 실업자 85만명뿐만이 아니다. 실업자를 포함해 사실상 실업상태에 처한 유사실업자는 359만9천명에 달한다. 유사실업자에는 일시 휴직자 66만4천명, 16시간 이하의 불완전 취업자 15만2천명, 취업준비생 52만9천명, 그냥 쉰다는 사람 176만6천명이 포함된다. 더 기막힌 사실도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조만간 발간될 ‘2008 고용보험사업 심층평가’를 미리 살펴보니, 실직자의 73%가 실업이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05년 임금노동자 1만1천450명의 경제활동을 1년 동안 추적(패널조사)해 도출한 결론이다. 조사에 따르면 특히 여성은 실직했을 때 81.7%가 비경제활동 상태라고 응답했고 주된 활동상태를 가사나 육아로 응답했다. 남성은 실직 때 비경활이 아니라 실업상태로 남아 있는 비중이 여성의 2배를 넘었다. 비경활 상태에 있을 때는 대부분 ‘그냥 쉬었다’고 대답했다. 또 1년 동안 20.8%가 평균 4.4개월의 실직기간을 겪었고 이들 중 29.5%는 반복실업을 경험했다. 가사노동까지 포함해 실업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이병희 연구위원은 “실업률이 실업 위험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직자 가운데 상당수는 실업이 아닌 비경제활동상태로 이행하고 이런 선택이 자발적인 이유가 아니라 고용보험 미적용과 같은 제도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의 연구는 고용보험이 사회안전망으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실업사회’의 위험을 거의 줄이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사각지대 문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된 노동자는 938만5천명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1천605만명의 60% 수준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의 경우 94%, 비정규직의 경우 51% 수준이다. 적어도 절반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실직해도 구제수단이 없는 셈이다. 실업자 중에서도 실업급여를 받는 수급자 비중은 34.8%에 불과하다. 실업급여 미수급자의 반 이상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고용보험 지출액>적립액

여기에다 실업자는 아니어도 실질적인 실업 상태인 270만명의 예비노동자와 실직 노동자들은 안전망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범위를 넓혀 보면 실업급여 가입대상이 아닌 특수고용직노동자, 600만명을 넘는 자영업자 역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소득대체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끊임 없이 제기된다. 김혜원 노동연구원 부연구원 등은 ‘사회안전망의 경제적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고용보험 소득대체율이 10% 증가하면 고용률이 6%포인트 늘고 실업률은 1%포인트 감소한다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현재 우리 고용보험의 소득대체율은 2004년 기준 43%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관건은 재원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해 말 노동부가 제출한 기금운용계획을 심사하면서 “실업급여의 수혜율과 소득대체율을 높여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실업급여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우려가 함께 존재한다.
우선 고용보험기금 건전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실제로 실업급여 신청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고용보험 적자가 증가하고 있다. 실업급여 신청자는 지난해 10월 6만3천명에서 12월 9만3천명으로 증가하더니, 지난 1월에는 2008년 1월보다 36.6%가 늘어난 12만8천명에 달했다. 결국 고용보험기금은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지난해 실적은 집계 중이지만 5천6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그래프 참조> 2007년에는 5천76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에는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에서만 1조원 넘는 적자예산을 편성한데다 올해 2조원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표1 참조>
 


현재 적립금 감소추세로 보면 올해에는 기금 지출액이 적립금보다 많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지난해 고용보험기금과 관련한 합의에서 적정 지출액 대비 적립금 배율을 1.5~2배로 잡고 배율보다 낮아지면 보험료율을 높이기로 한 바 있다.

보험료 납입자와 수혜자 일치해야

국회 환노위가 우려하는 것은 재정 적자가 아니라 고용보험 운영 문제였다. 환노위는 보고서에서 “실업급여 계정 적자는 피보험자수 증가 등의 요인에 따라 경제여건과 무관하게 향후 몇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회안전망 기능강화를 위한 재원확충은 현재처럼 고용보험기금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재원으로 쓰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으로 고용보험을 사회보험으로 원상회복시키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상회복이란 고용보험 납입자와 수혜자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고용보험법을 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런 비판은 노동부의 기금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올해 예산 11조8천억원 가운데 일반 예산 비중은 9.7%에 불과하다. 일반예산이 들어가야 할 곳에도 고용보험으로 채운 경우는 허다하다. 올해 고용정책과 직업능력개발 사업을 국고7천억원, 고용보험 2조원으로 수행한다. 특히 2005년 고용보험 지원대상을 피보험자에서 ‘그밖의 취업할 의사를 가진 자’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고용보험법을 바꾸면서 일반회계로 운영되던 사업이 대거 고용보험사업으로 전환됐다.

고용보험기금 운용 노사정 동수 참여

고용지원센터 운영이랄지, 산하기관 운영을 고용보험기금으로 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에 노사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정부 몫으로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를 넣은 것은 일반회계 사업을 원래로 돌려놓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고용보험기금 운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가 요구했던 정책 참여도 다음달부터 가시화될 예정이다. 노사정위가 지난해 5월 합의했던 내용이 지난해 말 고용보험법을 통과했고 관련 시행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처리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노사정은 변동요율 적용과 함께 현행 고용보험전문위원회를 고용보험위원회로 개편하고 노조 위원과 사용자 위원, 정부 위원, 공익위원이 같은 수로 참여키로 결정한 바 있다. 고용보험위원회가 고용보험기금 제자리 찾기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2009년 3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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