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한 공기업에서는 지난달 23일부터 신규채용을 위한 전형이 한창이다. 공기업 신규채용이 자취를 감춘 상황에 신입사원 100여명을 채용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반가운 단비’다. 그런데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출근·점심시간마다 회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노조는 “회사가 아무런 협의없이 신입직원의 임금을 15%나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명백한 임금·단체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에 대한 결정은 당연히 노조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회사가 지난 19일 정부의 대졸초임 삭감 방침 이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 공기업은 입사와 동시에 조합원 자격을 갖는 유니온숍이 적용되기 때문에, 신입사원의 임금은 노조와 더욱 무관치 않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신규직원 초임삭감이 전체 직원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불안해 한다”며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 한국전력 계열사는 이달에 총 1천656명의 청년인턴을 뽑는다. 채용인원은 한국전력 450명·한국수력원자력 390명·한전KPS 215명·한전기술 95명·중부발전 90명·남동발전 85명 등이다. 정원의 4%(660명)가량을 6개월 기한 인턴으로 채용할 예정인 5개 발전사 인사담당자들은 요즘 골치를 썩고 있다. 각 사업소마다 인턴을 받지 않겠다고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턴 채용계획은 세웠는데 정작 인턴에게 맡길 업무가 없어서 곤혹을 치루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노조 관계자는 “발전소는 기술직군 위주의 전문분야라 인턴이 들어와도 할 수 있는 일은 복사나 사무보조 외에는 없다”며 “최근 인사팀에서 사업소에 공문을 보내 ‘인턴 활용방안을 강구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초임 깎아 인턴 늘려라”

정부는 지난달 19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공기업 대졸 초임을 최대 30%, 1천200만원 정도 깎겠다고 밝혔다. 대졸초임 인하 대상은 전체 297개 공공기관 중 지난해 기준으로 대졸 취업자의 기본연봉이 2천만원 이상인 곳이다. 구체적인 삭감률까지 정해졌다. 정부는 최대 4천만원 수준인 초임을 3천만원 이하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초임 3천500만원 이상은 20~30% 정도 삭감된다.

또 초임 3천만~3천500만원은 -15~-20%, 2천500만~3천만원은 -10~-15%, 2천만~2천500만원은 -10% 이하의 삭감률이 적용된다. 2천만원 이하는 변동이 없다. 정부는 이미 초임이 파악된 116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즉시 삭감을 권고하고 나머지 181곳에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공공기관 인턴사원 채용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 이용걸 제2차관은 “당장 116개 기관에서 600명 정도를 채용할 수 있고,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되면 1천명 이상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각 공기업은 정원의 4% 이상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하라는 할당량을 받아 놓은 상태다. 중앙과 지방부처, 지방공기업도 각각 정원의 2~ 3%에 해당하는 인턴 할당량이 떨어졌다. 그러나 신규채용은 기대하기 힘들다.

임시처방 ‘인턴채용’ 곳곳에서 부작용

정부의 목표는 ‘공공기관 대졸초임을 낮춰 공기업 쏠림현상을 막고, 민간기업 초임 인하를 유도해 일자리 나누기를 선도한다’는 것.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정원 확대는 없다는 뜻이다. ‘정원감축-임금삭감-인턴확대’로 요약되는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정책은 곳곳에서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최악의 실업률을 방어하기 위한 고육직책인 청년인턴은 ‘복사알바’, ‘커피알바’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1월부터 760명의 인턴을 채용해 5주간 운용하고 있다. 채용기간이 짧아 업무에 크게 도움이 안 되고 청년실업 해결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제조업처럼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로 돈을 만지는 업무이기에 채용기간이 짧은 인턴직원에게 맡길 만한 업무가 거의 없다”며 “특히 자금사고가 날 경우 책임 소재도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워드작업 등 사무보조나 창구안내·마케팅 업무 등이 인턴직의 주요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은행은 앞으로 뽑을 인턴직원 1천200명의 채용기간을 늘리고 정규직 채용시 인원의 20% 범위 내에서 우수인턴을 채용하는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노조가 인턴사원의 정규직 채용에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공기업 인력감축 방침에 따른 정규직의 고용불안 탓이다. 최근 회사로부터 ‘50명의 인턴사원을 모집하고 그중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통보받은 인천공항공사노조는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따라 2012년까지 102명의 정원을 감축해야 할 상황”이라며 “인턴사원의 정규직 전환은 곧 기존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력기술공사는 정반대의 경우다. 한국전력기술공사는 6개월간 근무할 95명의 인턴사원을 이달 중 채용할 예정이다. 노조는 ‘단체협약에 따라 3개월 이상 근무한 신규직원은 고용의제가 적용, 정규직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인턴은 모집전형이 달라 신규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단협 해석을 둘러싼 충돌이 예상된다.

불 지피는 정부 … 노동계 ‘부글부글’

공공기관에 이어 30대 그룹도 초임삭감 방침을 밝혔다. 노동계는 신규직원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에까지 대대적인 임금삭감 바람이 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채용계획도 없이 초임삭감 계획부터 남발하고 있는 탓이다. 공무원은 이미 임금삭감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초임 삭감 방침에도 대부분 공공기관이 신규채용을 꺼리고 있어 아직까지는 노사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일부 공기업에서는 노사 간 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하반기에 200~300명 가량 신규채용 계획이 있는 한국전력은 최근 초임 조정을 노조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격한 대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진흥공단도 이달 30여명을 신규채용 한다. 공단은 면접을 보러 온 구직자들에게 ‘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이 삭감될 수도 있다’고 공고했을 뿐, 노조의 눈치를 보며 아직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노조와 아무런 협의없이 일단 언론에 초임삭감을 발표하고 보는 금융공기업 때문에 금융노조는 더욱 강경한 입장이다. 특히 초임삭감을 선언한 기업은행과 우리은행 모두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이미 대졸 초임 30% 삭감을 통한 신규 및 인턴사원 채용계획을 밝혔던 자산관리공사와 주택금융공사는 노사 간 합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노조는 “지난해 노사 특별합의서에서 임금 동결을 조건으로 청년실업 해소와 근무시간 정상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신규채용을 확대하기로 했다”며 “초임삭감 없는 신규채용이 확대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마른 수건 쥐어짠다고 물이 나올까?

인턴제도는 이미 실패가 검증된 정책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정부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인턴을 채용하는 기업에 1인당 5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2004년 감사원이 “정부의 인턴지원제도가 오히려 기업이 자체 충원계획에 따른 정규인력 채용을 억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해 2005년 폐지됐다.

또 지금의 행정인턴에 해당하는 ‘청소년직장체험프로그램 공기업 등 공공기관 연수(재학생 포함)’도 2002년부터 실시됐으나, 정식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자 참여인원이 2004년 4만9천305명에서 2007년 1만6천여명으로 급감했다. 박준형 공공서비스노조 정책실장은 “마른 수건을 아무리 쥐어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채용계획이 없으니 대졸초임을 삭감한들 재원이 마련될 턱이 없다”며 “지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국민을 속이고 노동자를 희생시키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신현경 기자 joeun@·김봉석 기자 seok@

김미영 기자 ming2@


 

<2009년 3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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