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으레 노동자들에 대한 감원부터 시작한다. 경영위기가 방만한 경영, 과도한 주주에 대한 배당,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노동자들만 책임을 뒤집어쓰는 곳이 적지 않다. 노조가 구조조정에 반대해 쟁의행위라도 결의하면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노조는 순식간에 ‘공공의 적’으로 규정된다.

최근 ‘기업을 망하게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정리해고 반대에 나선 노조가 늘어나고 있다. 회사가 전체 직원 7천150명 가운데 2천646명(36%)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지난 14일 쟁의행위를 결의했다. 6일 정리해고 대상자 94명에게 노란봉투(통지서)가 전달된 금속노조 위니아만도지회는 조업을 거부했다. 지난달 11일 회사가 944명의 직원 중 507명(53.7%)를 해고하겠다고 통보한 대우버스노조는 같은달 30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1분기 노동부에 신고된 정리해고는 22건(99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정리해고 인원(308명)이 3배 이상 늘어났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사업장의 경우 노조가 쟁의행위를 결의했거나 진행 중이며, 회사가 직장폐쇄로 맞서는 악순환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데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금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감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부할 뾰족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묻지마’ 정리해고는 곤란하다. 노조가 해고에 반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마녀사냥을 해선 안 된다. 경영진의 잘못이라면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해당 기업의 고용규모와 지역 공헌도,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굳이 내부역량을 훼손할 필요가 없다.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살리면 될 일이다. 감원이 필요하다면 해고자에게 실업기간의 생계지원과 재취업의 길을 열어 주면 된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뻔하다. 일자리를 잃고 생계 곤란에 직면한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얻은 소득인 시장임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경우 사회임금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그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사회임금에는 실업수당·보육지원금·기초노령연금·건강보험이 해당된다. 사회공공연구소(소장 강수돌)는 최근 우리나라 노동자가 받는 사회임금의 추정치를 내놨는데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회복지 관련 통계치로 재구성한 한국의 사회임금은 총가계운영비의 7.9%다. OECD 회원국 평균은 31.9%인데 한국의 사회임금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을 살펴보더라도 영국(25.5%)·일본(30.5%)·프랑스(44.2%)·스웨덴(48.5%)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결론적으로 한국 노동자는 기업에서 주는 시장임금으로 가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사회임금이 적을수록 경제위기로 인한 생계불안 위험이 커지고,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도 격렬해진다.

시장임금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장시간 노동이나 임금협상에서 단기 성과금에 집착하게 한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받을 수 있을 때 받자’는 노동자와, ‘뽑을 수 있을 때 많이 뽑자’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닥뜨린 결과다.
구조조정·임금협상 시즌마다 나타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임금을 높여야 한다. 기업에서 주는 소득인 시장임금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운동도 사회임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임금이 노동자 내부의 평등과 연대효과를 극대화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 4월16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