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노동부가 진폐재해자에 대한 보상을 진폐보상연금으로 개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어 14일 오후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법개정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진폐재해자들의 관심을 보여주듯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보상금 ‘진폐보상연금’으로 일원화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진폐환자에게 지급되던 장해급여·휴업급여·유족일시금이 폐지되고 진폐보상연금으로 단일화된다. 기존에는 진폐재해자에 대해 폐기능 장해 수준에 따라 장해급여를 지급하고 합병증이 있는 경우 치료와 함께 휴업급여를 지급해왔다. 때문에 재가(비요양) 진폐재해자들은 생활보호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법이 개정돼도 기존에 휴업급여를 받던 요양환자는 그대로 현행법을 적용받는다. 요양환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득권을 보장한 것이다. 신규진폐판정자는 개정법을 적용 받는다.

정현옥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은 “진폐재해자들이 일시금을 받고 나면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었다”며 “개정안의 기본 골격은 진폐재해자에 대한 보상을 연금형태로 바꿔서 살아계신 동안 진폐재해자가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2007년 11월 진폐제도 개선협의회를 구성해 지난해 10월까지 15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협의회에는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경총·노동부·전문가 10명이 참가했다. 
 
기초연금 “최저임금 50%는 적다”

정부안에 따르면 진폐보상연금은 기초연금과 진폐장해연금으로 구성된다. 기초연금은 최저임금의 50% 수준인 월 48만7천원(올해 기준)이 제시됐다. 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기초연금의 기준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현금급여 등이 거론됐지만 노동부는 “재해보상 성격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다. 진폐장해연금은 장해등급에 따라 3단계로 차등 지급된다. 진폐보상위로금은 현행 장해위로금과 유족위로금을 통합해 원칙적으로 장해판정시 지급된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진폐제도는 합병증이 진단돼야만 요양이나 보상이 제공되는 제도였다”며 “요양과 보상을 분리한 것이 개정안의 원칙”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기초연금의 기준과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주영수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해 한국진폐재해자협회와 재가진폐환자 1천2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구당 평균 가족수는 2.1명이었다. 부채는 전체적으로 1천만원이 넘었다. 주영수 교수는 “부채의 상당부분은 의료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며 “기초연금으로 최소 2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지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 부담스러운 경영계

조병기 노동부 산재보험과장은 개정안에 따라 재가환자들에게 연금이 지원되면서 초기에 500억원의 추가 지출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7~8년 후에는 기존방식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15~20년 후에는 소요예산이 현제도와 비슷해질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법개정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김판중 경총 안전보건팀장은 “산재보험법 기준이나 선진국 사례를 봐도 진폐에 대한 요양 기준이 관대한 편”이라며 “광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다른 기업들이 산재보험료를 지원하는 데 기초보상연금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노령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의 일반 회계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기초연금으로 최저임금의 50%가 아닌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50% 적용은 산재보험법 일반원칙에도 맞지 않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기초연금은 최저임금에 준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성호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국장은 “기초연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중 2인 가구 현금급여액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최소한 최저임금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희직 한국진폐재해자협회 후원회장은 “기초연금은 최소 월 73만원 이상 지급해야 한다”며 “단순 생계 지원금이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육체적 손실에 대한 보상임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폐판정 문제 제기 잇따라

진폐재해자 관련 협회 관계자들은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조재일 전국진폐재해자협회 자문노무사는 “진폐제도 개선협의회 위원 10명 중 진폐환자를 대변할 수 있는 인원이 없었다”며 “양대노총에 위임한 바도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장해등급을 하향 판정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성희직 후원회장은 “2006년에 7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 2007년 정상등급을 받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며 “하향 판정을 막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일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법률고문은 “일부 지역에서 정형외과 의사가 공단의 자문의를 맡고 있다”며 “어떻게 정형외과 의사가 진폐환자를 진단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박 고문은 또 “공단의 하향 판정으로 요양환자나 재가환자 모두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병순 산재의료원 직업성폐질환연구소장은 “입법예고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며 “진폐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추가적으로 건강진단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폐재해자 1만7천여명, 합병증은 폐결핵 가장 많아
노동부에 따르면 국내에 생존해 있는 진폐재해자는 지난 2007년 현재 1만7천542명이다. 2020년에는 1만9천386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신규 진폐판정자는 2004년 2천823명, 2005년 2천113명, 2006년 982명, 2007년 855명, 지난해 657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진폐요양환자는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3천740명. 이 가운데 3천192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고 548명은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요양기간은 5~10년이 1천214명으로 가장 많고 10년 이상이 879명, 3~5년이 669명이다. 합병증으로는 폐결핵이 1천528명으로 가장 많았다.



<2009년 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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