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가 불러온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한국타이어를 퇴직한 박아무개(68)씨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독섬간염·폐렴·흉수를 앓은 박씨는 최근 눈에 띄게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았던 임아무개(51)씨가 사망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데 이어 올 들어 2명이 추가돼 5개월 만에 4명이나 죽은 것이다. 2006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국타이어 연쇄 사망자는 17명이나 된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대책위’는 사망자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96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117명의 노동자가 직무관련성 질병과 사고로 숨졌다는 것이다.

한국타이어 집단사망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에 제기된 산재요양승인 신청건수는 2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8건만 산재로 인정받았고 9건은 불승인됐다. 10건은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심근경색과 심장마비·관상동맥경화증·폐암·사고사 등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돌연사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보건연구원이 지난해 2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장시간 노동과 고열 작업환경이 심근경색이나 돌연사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을 뿐이다.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자(7명)가 산재로 승인됐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그러나 유기용제나 유해화학물질이 집단사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이렇게 되면 산재신청을 낸 뒤 숨진 박씨와 임씨의 경우 지병에 따른 사망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다. 한국타이어 전·현직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론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산업의학계 일부 학자나 의문사대책위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결론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다.

박씨와 임씨의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박씨는 89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입사해 정련과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정련공정은 천연·합성고무에 화학물질을 혼합하는 공정이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재료를 붓거나 원료의 무게를 재는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에 노출될 수 있다.

94년 한국타이어 가류과에 입사했던 임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3년간 가류과에서 일했던 임씨는 96년 대리점으로 발령받았다. 가류과에서 일하던 시절에 얻은 병으로 근무지를 옮긴 것이다. 병세가 악화됐던 임씨는 2001년 퇴직했지만 결국 뇌종양으로 죽었다. 임씨는 죽기 전에 “가류과에서 일할 때 작업장에는 하얀 연기가 뿌옇게 끼여 있었다”며 “숨을 쉬지 못할 정도”라고 증언했다.

이들을 최종 진단한 임종한 산업의학대 교수는 “집단발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유해인자는 고무흄이나 카본블랙”이라고 말했다. 의문사대책위가 “돌연사가 아니라 작업관련성 질병에 의한 사망사고”라고 주장한 것은 임 교수의 진단에 힘입은 것이다.

타이어의 내구성을 강하게 하기 위해 투입되는 카본블랙에는 독성물질이 함유돼 있는데, 작업 과정에서 흡입하는 카본블랙의 미세먼지가 집단사망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한국타이어의 장시간 노동, 고열 작업환경뿐 아니라 유해물질도 집단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한국타이어측은 일부 공정에서 카본블랙의 독성물질이 검출됐으나 '규제치 이하'였다며 의문사대책위의 주장을 반박한다.

하지만 온당치 않은 주장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당시 한국타이어측은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작업공정에 널리 쓰인 유기용제 솔벤트의 시료채집조차 회사측이 대신했기 때문이다. 재직 노동자와의 면담도 가로막았다. 확인된 산업재해 은폐만 183건에 달한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노동계와 의문사대책위, 시민단체에서 새로운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사망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타이어측의 행태로 인해 죽어나가는 노동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남편이 뼛속까지 아프다며 빨리 죽는 약 좀 사달라고 한다”는 피해자 가족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때마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한국타이어의 기업문화와 미세먼지·고무흄에 대한 추가 역학조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간의 의혹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결론이 도출되길 기대한다.
 
 
<매일노동뉴스 4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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