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한국타이어에서 27년간 근무했는데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가래를 수도 없이 뱉어냈다. 혈압이 높고 동맥경화·부정맥·뇌졸중 여러 가지 질병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숨 쉬는 것밖에 없다.”

24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열린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위원장 박응용)의 기자회견장. 이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을 신청한 윤아무개(68)씨의 부인 이모(66)씨는 “뼈 속까지 아파하는 남편은 빨리 죽는 약 좀 사달라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한국타이어 가류과에서 27년 동안 일하다 지난 1997년에 퇴사했다. 그는 지난 17일 뇌내출혈과 본태성원발성고혈압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24일 윤씨와 함께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퇴사한 박아무개(69)·안아무개(66)씨도 이날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박씨는 지난 89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정련과에서 근무하다 99년 퇴사했고, 독성간염과 폐렴·흉수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81년에 입사해 98년까지 정련과에서 일하다 퇴사한 안씨는 협심증·본태성원발성고혈압·말초신경병증 진단을 받았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안씨는 2003년에 쓰러진 뒤 혼자서는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카본블랙과 아연화(화공약품)를 계속 다뤘다고 했다. 안씨는 자신의 질환을 직업병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2월 동생으로부터 “진상을 규명하는 대책위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날 산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카본블랙' 분진, 유해성 논란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입수한 2002년 후 ‘한국타이어 집단사망자 외래진료 내역’도 공개했다. <표 참조> 이에 따르면 사망자들의 경우 여러 개의 질환이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박응용 대책위 위원장은 “사망자들의 외래진료 내역,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질환 내역, 지난해 특수건강검진 내역 등을 보면 비슷한 질병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현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업병을 인정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예방차원에서 현재 한국타이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한국타이어 작업현장의 유해요인으로 타이어 생산과정에서 재료로 쓰이는 카본블랙과 초미세분진(미세분진 속의 중금속과 유해화합물), 유기용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카본블랙의 유해성은 카본블랙에 불순물로 포함돼 있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에 의한 독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핵방향족탄화수소는 발암물질로 인체 위험성이 판명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카본블랙의 90%는 타이어 산업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본블랙은 타이어가 찢어지는 데 견디는 힘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단은 “초미세분진 상태로 노출되는 카본블랙 분진의 독성에 대해서는 현재 동물실험이나 환경역학연구 단계”라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연구에서는 학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종한 인하대 산업의학 교수는 “최근 고무흄이나 나노 물질인 카본블랙이 혈관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한국타이어 집단 발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유해인자는 고무흄과 카본블랙”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런 논의가 공론화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책위는 이날 노동부에 유해요인의 직무연관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한편 지난 18일 민주노총에 전국공동대책위 신설을 요청했다.


<2009년 3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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