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의 핵심은 ‘사용기간 연장’ 여부다. 지난해 말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노동정책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이 장관은 오는 7월에 사용기간 제한(2년)에 걸리는 기간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될 것이라며 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계약기간 2년을 초과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전환된다’는 비정규직법 조항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대략 2년 정도(2년→4년) 사용기간을 연장할 경우 대량 해고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주장은 종전의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의 지형을 바꾸는 것이었다. 2007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사용기간 제한과 차별시정’이 핵심이다.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제한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 법의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계약기간 종료 이전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당 업무를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이 법을 회피했다. 무기계약직뿐만 아니라 하위직급 신설, 분리직군 도입과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로 차별시정 조항을 비껴 갔다. 고용은 보장되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은 정규직에 못 미치는 이른바 ‘중규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어디에도 낄 수 없는 노동자층이다.

때문에 비정규직법 개정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와 노동계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장관은 이를 뒤집고 ‘사용기간 연장’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이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 이상은 되지 않은 듯했다. 사용기간 연장이라는 ‘덫’에 걸려 현행 비정규직법 유지 또는 옹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러한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어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기계약직 근로자 노동인권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기간제)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평균 6년 이상 한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자는 10년4개월 동안 7회, 무기계약 전환자는 6년3개월 동안 4.8회 계약갱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민간기관 모두 1년 정도의 단기계약을 반복갱신하면서 정규직화를 기피했다는 증거다.

기간제 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어도 처지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무기계약직의 월 평균임금은 157만9천원으로 정규직(238만6천원)의 66%에 불과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뒤에도 복지·승진에 있어 기존 정규직과의 격차는 그대로였다. 무기계약직은 차별을 받아도 시정조차 요구할 수 없다. 비정규직법이 차별구제 신청대상을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은 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계약으로 전환됐다고는 하나 고용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공공·민간기관들은 취업규칙·근로계약서를 통해 계약해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되레 정규직에 비해 해고사유가 광범위했다는 게 실태조사 결과였다. 그나마 정부는 공공부문 선진화방안에 따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무기계약 전환 예외사유를 허용했다. 당초 예정된 무기계약 전환계획마저 정부 스스로 표류시킨 것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3년이든, 4년이든 사용기간 제한을 연장하더라도 계약해지·교체사용·외주화라는 기업의 회피전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규직과의 차별이 유지되고, 해고가 가능한 무기계약직도 기업의 허울 좋은 정규직화 모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법 개정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반복적인 계약 갱신, 교체사용을 할 경우 객관적인 사유가 없다면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도록 새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의 차별처우 규정상 사유에 고용형태를 포함시켜 사각지대에 있는 무기계약직에게 적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는 이 장관이 제시한 사용기간 연장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인권위 연구팀이 제시한 정책방향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용기간이라는 ‘출구 제한’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이 빠져 나갈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을 개정한다면 사용사유라는 ‘입구 제한’을 병행하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3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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