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민정비상대책회의가 지난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지난 1998년 2월 노사정 대타협, 2004년 2월 일자리 협약에 이어 세 번째다. 노조가 임금동결·반납·절감과 불법파업 근절을, 기업이 해고자제와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정부가 임금감소 세제지원과 사회안전망 강화·일자리 창출을 결의했다. 시민·종교단체는 합의가 이행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노사민정비상대책회의는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에서 이를 칭찬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정부가 주도해서도 이런 일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며 “대타협이 실제로 전국에서, 현장에서 지켜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부정하기 힘들다. 실제 70년 말 석유파동, 90년대 고용위기 속에서 유럽국가들의 사회적 합의는 실업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았다. 이를 모델로 추진했던 게 노사정 대타협(98년)과 일자리 협약(2004년)이다. 때문에 두 합의는 최근 노사민정 합의를 실천하는 데 있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노사민정 합의’는 여러모로 참여정부 시절의 ‘일자리 협약’과 닮았다. 노사민정 합의에는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빠진 점, 경제·사회개혁 방안과 비정규직법·복수노조·전임자 관련법 등 쟁점이 제외된 점을 고려했을 때 일자리 협약과 비슷한 조건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일자리 협약은 고용안정·노사화합·임금안정 이라는 3대 실천과제로 구성됐다. 노조는 대기업·공기업의 2년간 임금안정을 약속했다. 기업은 고용조정 자제와 하도급 업체 처우개선을 공언했다. 이에 호응해 정부도 고용확대를 위한 세제지원과 공공부문 신규채용 확대를 결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 본회의를 직접 주재했으며, 이후 2008년까지 5년간 매년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개 사회적 합의는 내용보다 실천에 성패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일자리 협약이 고용위기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매개로 노사관계 안정과 사회적 대화체제 활성화에 기여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정적 평가가 많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라는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던 그해(2004년)에는 새 일자리가 40만개 창출됐다.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집권 후반기의 일자리 창출규모는 반토막에 그쳤다. 그나마 일자리 협약 후 만들어진 일자리는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지 못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만든 일자리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에 그쳤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의 새 일자리도 비슷했다.

사회적 대화체제도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참여정부 내내 반쪽짜리 노사정 대화체제가 지속됐다. 2004년 4월15일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탄핵정국을 돌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노총 참여를 전제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구성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노동계의 임·단협 투쟁과정에서 불거진 노정갈등, 정부 주도의 비정규직 법안 추진으로 인해 대화무드는 오래갈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2004년 하반기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새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를 넘긴 2005년 벽두에는 시민단체 원로를 중심으로 한 ‘희망포럼’이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권유했다. 일자리 협약이 체결된 지 1년도 안 돼 그 협약의 실효성을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결국 ‘협약 따로, 현실 따로’가 된 셈이다.

비록 일자리 협약은 과거가 됐지만 현재의 노사민정 합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유럽의 경우 산업별 노사단체가 집중되고 조율된 단체교섭을 벌이는 데 이러한 구조에서 나타난 사회적 합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지만 매우 불안정하거나 형식화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두 번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낸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이다. 두 번의 사회적 합의가 불안정하거나 형식화된 것은 ‘반쪽합의’였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 영향이 큰 대기업 사업장 노조를 포괄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한 사회적 합의 이행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노사민정 합의는 후속합의로 보강되고, 소외된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도 크다. 정부가 앞장서서 합의를 실천하고, 대화체제를 지원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는 오래갈 수 없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실패한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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