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각계 전문가 363명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 1년, 국정운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4.66%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낙제에 가까운 'D학점'의 성적표가 나왔다. 일자리와 노사관계부문만 따로 살펴봐도, 이명박 정부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 보인다.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노동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출범 1년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각계의 평가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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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정책 패러다임 변해야-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달리 표현하면 노동억압 정책이다. 87년 이후 조금씩 신장돼 온 노동자의 권리와 이를 보호하던 제도적 장치들이 퇴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는 비정규직법에 다시 손을 대 비정규직을 영속화하려한다. 한마디로 노동정책이 파탄 수준이다.
정부가 내놓은 실업대책도 문제다. 도대체 무엇이 대책인지 알 수가 없다. 대졸자 초임을 깎고, 임금을 삭감해 일자리를 만든다는데 그런 식으로는 절대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의 상황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골고루 적게 일하는 것이 고용정책의 비전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리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이 저하된다. 유기농업이나 교육·복지·사회서비스 같은 분야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수출을 많이해 달러를 벌어 부자가 되자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답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 두루 일하되 적게 일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 나누기다.
최근 노사민정 합의가 나왔다.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무엇을 합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번에 나온 합의 내용은 경제위기로 발생한 사회적 불만을 잠재워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차원으로 보인다. 그마저도 자본가들은 자기 책임을 축소하려고 안달이다. 이런 상태에서 합의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 노력했으나 성과 없어-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
정부도 노력은 했는데 큰 성과가 없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열심히 했는데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과의 대립각이 첨예하다보니 가시적 성과를 내기에는 미흡했다.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는 찬성한다.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규제완화도 필요하다. 실업문제과 관련해서도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는 정도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니 노동부도 실업보험 나눠주는 것 이상은 하기 여려울 것이다.
공공부문 청년인턴제도 등에 대해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정규직 일자리 줄여 비정규직으로 메운다는 식의 비판이 많다. 하지만 실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거의 없었다. 퇴직자 발생에 따른 자연감소 정도다.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 다만 공공기관에서 청년인턴들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은 점은 문제다. 청년인턴제도가 청년실업자들을 위한 직무교육의 장으로 활용돼야 한다.
최저임금법과 비정규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실에서, 일정부분 조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올릴 수도 잇고 낮출 수도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가 보호받을 대상을 거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법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이 실업상태에 내몰리는 것을 막겠다는 정부의 법 개정 취지에 동의한다.
최근 나온 노사민정 합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지만, 민주노총을 포괄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 평가할 것이 없어-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노동정책을 평가하기 어렵다. 해놓은 것이 없는 데 무엇을 평가하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노동정책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했었는데, 실제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정부가 한 일이 없다.
최근 실업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종합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실업대책을 경제부처가 소관하고, 노동부는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부가 실업급여 대상자를 늘리자고 제안해도 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 끝이다. 실업대책에 대해서도 평가할 만한 게 없다.
노동정책이 경제정책의 하위개념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일자리 만들기는 기업의 투자에 달려 있지만, 일자리를 유지하고, 일자리를 노동자에 연결하고, 노동자들의 직업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노동부의 몫이다. 적극적 고용정책을 가지고 노동부가 경제부처를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노사민정 합의도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야 하는 내용이다. 노사가 주도하고 정부가 마지못해 끌려오는 식은 곤란하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을 듣는 것 아닌가. 앞으로 합의 이행과정에서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부가 독립기관으로 존재하는 한,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서민들 주머니 채워줘야-이수봉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서민들의 삶이 파탄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녹색뉴딜'을 내놓았지만, 대기업의 나눠먹기식 토목공사로 민생을 안정시킬 수는 없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고, 이를 통해 유효수요를 만들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고용안정은 총수요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이 만든 상품을 누군가 사 줘야 고용안정이 가능하다. 전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실업부조제도를 도입한다거나, 적극적인 복지정책으로 수요를 진작시켜야 경제위기와 사회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이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할 수 있도록 제도와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상위 10%에 돈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피가 몸 전체에 돌지 않고, 머리에만 쏠려 있는 셈이다. 일자리를 만들어 피를 순환시켜야 하는데,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조차 임금삭감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청년인턴제도와 같은 고용정책도 응급처방에 불과하다. 암환자에게 소독약 바르는 식이다. 이런식의 처방은 문제를 더욱 키울 수 있다. 고용정책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 노동자 좌절시키는 MB정부-이상원 한국노총비정규연대회의 의장
비정규직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를 보면 혼란스럽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왜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서 해법을 찾는지 모르겠다.
노동관련 법과 제도가 노동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지켜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노동자들을 내리막길로 내몰고 있다. 노동자들은 불투명한 미래를 떠올리며 좌절한다. 열심히 일하면 좀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기대를 갖기 어려워졌다.
정부 정책은 젊은이들도 나락으로 몰고 있다. 공공부문 청년인턴은 10개월까지 비정규직이다. 10개월 뒤 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정부는 고민하지 않는다. 고용문제에 대한 정부의 철학이 부족하다보니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 인턴들은 장기실업 상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암울하다.
우리사회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괜찮은 일자리도 적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를 발굴해 이를 실업자들에게 연결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데,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찾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 노동자에게는 '워스트'-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돌이켜보기 싫은 1년이었다. 우리 노조에 있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장기투쟁의 서막을 뜻했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 회사측은 주요 노조간부들을 모조리 해고했다. 교섭도 해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자체가 분규 장기화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기업들에게는 '베스트'였지만, 노동자에게는 '워스트'였다.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를 중차대한 과제로 꼽으면서도, 법·제도는 자본가의 이익을 늘리는 데 충실했다. 참여정부의 실책인 비정규직법을 올바로 개정해 정책적 우위에 설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법 개악을 추진했다. 철학도 없고, 정치력도 부재하다.
현 정부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회통합과 안정을 위해 노사관계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난 1년 내내 최악의 노사관계가 전개됐다. 이번 노사민정 합의 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모조리 배제됐다.
 
 
<매일노동뉴스 2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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